2025년 5월 21일

"어느 순간은 오래도록 선명하게 기억되기도 한다"

by 리움

자정이 가까운 시간, 한강 다리 위 버스 정류장에 앉아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8차선 정도의 도로? 불빛을 빛내며 달리는 자동차들, 멀리서 보면 이렇게 지나가는 불빛들도 도시의 야경이 되겠지. 겨울의 버스 정류장은 너무 추웠는데, 날씨가 풀리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까지 생겼다.


선선히 부는 바람에는 물 냄새가 없다. 바다를 향해 갈 강물에는 바다 냄새가 나지 않았다. 까만 하늘과 간간히 자나 가는 자동차 불빛과 이어폰 속 노래와 가끔 귓가를 흔드는 바람, 버스가 도착하려면 아직도 9분이 남았다.


버스가 언제 오나, 피곤한데 빨리 집에 갔으면, 안절부절 버스만 기다렸다. 핸드폰을 보고 버스 도착 알림 전광판을 보고 버스가 오는 곳을 보고, 그렇게 몇 달, 버스 정류장에 머물렀다. 까만 하늘조차 보이지 않던 몇 달을 보내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바닷가에 아무 생각 없이 출렁이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정지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세상 모든 것이 움직인다는 걸 아는데, 시간이 틈에 잠깐 끼어,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까만 하늘을 올려다 보고, 고개를 내려 자정 가까운 한강 다리 위의 풍경이 오감으로 느껴지는 순간.


어쩌면 아주 오래 기억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특별하지도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어찌 보면 잔잔하기만 한 그 순간이, 선명하게 오감에 새겨졌다. 아주 이른 아침 얇게 쌓인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서 있던 순간처럼, 선운사 오르는 길목 작은 간이 카페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던 순간처럼, 번화가에서 마주친 아버지의 작아진 어깨에서 눈을 뗄 수 없던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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