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낮의 나른함을 좋아한다"
에어컨 청소의 계절이 돌아왔다. 선풍기도 슬슬 꺼내 놓을 때가 되었다. 한낮에는 30도까지 기온이 오르는 걸 보니, 정말,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게 느껴진다. 어릴 때는 여름이 가장 좋았다.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 체질 때문이기도 하고, 여름에 태어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냥 여름이 좋았다. 대청마루에 앉아 달달거리는 선풍기를 틀어 놓고, 신선 놀음하는 게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대청마루에 앉아, 뒤뜰로 난 문을 열어 놓고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한 국수나 수박화채나 미숫가루나, 커다란 대접에 후루룩 마시듯 먹으면, 참 시원하고 좋았었다. 마루에 엎드려 이동문고에서 빌려온 가벼운 소설책을 읽는 것도 좋았다. 엄마를 졸라 양갈래도 묶은 머리를 거울에 비춰보기도 했다. 여름은, 무더운 온도 보다, 매미 소리로 시원한 보리차로 달달거리는 선풍기 바람으로 그리고 바싹 마른 햇볕 냄새로 기억되었다.
지금은 영영 없어진 장소가 되었다. 집 앞 골목 끝에 있는 낡은 구멍가게도, 언니가 엄마 오나 망보게 보초 세워두던 오락실도, 속상할 때마다 찾아가 멍하니 앉아 있던 계단도, 이제 낡은 사진 속에, 그리고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곳이 되었다. 쓰다 보니, 기억이, 추억이, 향수가, 몰려온다.
작은 점이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고 향수가 되고, 그렇게 과거가 온다. 과거를 잠시 미뤄두자 그렇게 다짐해도 기억 속에는 과거밖에 없기 때문일까? 과거에 집착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다. 너무 과거만을 돌아보니,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그런데 가끔은 괜찮은 것도 같다. 여름 한 낮, 꼬맹이가 대충 마루에 앉아 나른함을 즐기고 있는 어느 기억을 잠시 꺼내, 여름의 건조하고도 따뜻한 냄새를 떠올리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