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월"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유월을 육월이라고 발음했었다. 육월이라는 발음이 잘못된 것인 줄을 몰랐었다. 육월과 비슷하게 시월도 십월이라고 발음했었다. 아무도 내게 발음이 잘못됐다고 말해주지 않았었다. 초등학교 동창은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동창이 되는 동네였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은 내 발음이 이상하다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익숙했던 것이리라.
대학교에 입학하고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 중 익숙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너도 나도, 서로 낯설기만 한, 갓성인이 된 아이들, 어느 날 친구가 '너는 왜 유월을 육월이라고 발음해?'라는 말을 듣고서야 내 발음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도 한참을 육월이라고 발음했었다. 발음도 습관이라 쉽게 바뀌지 않았다. 육월보다는 유월이 십월보다는 시월이, 서서히 익숙해지면서 육월, 십월이란 발음은 점점 어색해졌다.
유월이란 발음은 참 부드럽다. 소리의 울림이 잔잔한 물결 같다. 처음 경포호를 봤을 때, 반짝이는 윤슬과 잔잔하게 흔들리는 물결이 꼭 '유월'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유월'이란 발음과 '유월'이란 계절, 그리고 '유월'에 태어난 나, 잔잔하게 흔들리는 물결과 수면 위 반짝이는 윤슬. 흔들림 조차 고요한, 반짝임 조차 잔잔한, 유월.
만약 카페를 열게 된다면, '유월'이라 이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밝고 고요하며 잔잔한 분위기의, 커피 향이 가득한 카페. 커다란 창, 밝은 색의 원목 가구, 여백 가득한 공간에 부드러움이 가득 차 있는, '유월'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카페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 사실은 '유월'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공간에서 나른한 하루를 보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유월은 '육월'이던 시절부터 내겐 특별했다. 이상하게 자주 아팠고, 더 나른해졌고, 기대가 됐으며, 설레었다. 유월이 내게 특별하다는 것은 나만의 비밀이지만, 나를 아는 누군가에게, '유월은 나에게 특별해'라고 말한다면, '그렇겠지'란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내 삶의 가장 처음에 유월이 있었다. 그리고 매년 유월이 돌아왔다. 흔들림 조차 고요하고, 반짝임 조차 잔잔한, '나의 유월'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