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름"
덥다, 더운가, 더울까. 여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더위'가 아닐까. 뜨거운 태양, 초록의 나뭇잎, 선명한 원색의 꽃, 그리고 비. 여름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쨍한 원색, 그리고 눅눅한 먹색. 비는 정말 좋아지지가 않지만, 여름은 좋다. 세상 곳곳에 태양빛이 뾰족하게 박혀있는 것만 같은, 여름이 좋다. 습도 놓은 더위는 무겁고, 강렬한 태양빛은 뾰족하고, 점점 가벼워지는 옷차림에 군살들이 신경 쓰이고, 정점 없이 올라가는 불쾌지수에 짜증이 나고, 풀 가동되는 에어컨에 전기세가 걱정되지만, 그래도 여름이 좋다. 이제는 더위도 곧잘 타고, 쨍한 태양빛에 두통을 앓고, 쏟아지는 빗줄기에 바짓단이 다 젖지만, 그래도 여름은 좋다. 수만 가지 좋지 않은 점이 있다고 해도, 좋다, 싫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여름을 기다린다. 그렇게 여름이 왔다.
태양빛은 좋아하지 않지만 낮이 길어진 것은 좋다, 비는 싫어하지만 비가 쓸고 가 깨끗해진 공기는 좋다. 좋은 게 반, 싫은 게 반, 혹은 싫은 게 좋은 것보다 더 크더라도, 감정의 저울은 크기에 따라 정해지지 않는다. 감정의 저울에는 객관적 수치에 따른 공평함이 없다. 그래서 감정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절대로 이해될 수 없는 행동을 선동하기도 한다. 여름은, 선동의 계절이다. 들뜬 기분은 차분함의 기본을 잃었다. 달아오른 열기는 담담함의 자세를 잊었다. 알 수 없는 설렘, 붉게 달아오른 볼, 머리끝에서 이성이 기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다시 여름이 왔다. 알 수 없는 열기에 젖어 허우적거리던 여름은 아닐 수도 있다. 뜨거운 백사장을 맨발로 서성이다, 발바닥에 화상을 입던, 무모하고 거리낌 없던 여름은 아닐 수도 있다. 마냥 막연히 수평선 너머의 파도를 찾아 바다를 보채던 여름은 아닐 수도 있다. 모든 게 막연했지만, 그래서 뭐든 할 수 있던 젊은 날의 여름이 지나, 그렇게 여름이, 또, 왔다.
뜨겁게, 감정을 태워 이성을 끓이고, 기화된 열기가 동력이 되어 움직일, 여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