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엇"
무엇이 되고 싶은가? 무엇으로 남고 싶은가? 무엇으로 살아왔는가? 무엇이었는가? 같은 글자를 여러 번 쓰면, 익숙하게 쓰던 글자들도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져, 맞게 썼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무엇' 어쩐지 어색해져 사전을 찾아보니 '모르는 사실이나 대상을 물을 때, 그 사실이나 대상을 가리키는 말(출처 - 다음 국어사전)'이라고 나왔다. '모르는 사실이나 대상'. '무엇'이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럼 나는 아직도 스스로를 잘 모르나 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내가 나를 가장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하고는 한다. '내가 아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아는 나'는 조금 많이 다른 것 같아서, 무엇보다 '나답다' 생각하던 나의 모습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것 같아서,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나라서, 이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이후의 '나'도, '무엇'이었고, '무엇'이고, '무엇'일 것 같아서.
나는 겁이 많다, 의심도 많다, 호기심도 많다. 호기심이 많지만 궁금한 것도 잘 참는다. 대체로 '겁'과 '의심'이 호기심을 이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험한 일'에 휘말리는 일이 거의 없다. 위협이 될 만한 것은 잘 피해 다니는 편이다. 그러다 가끔 '호기심'이 겁도 의심도 사라지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는 무엇도 나를 말리지 못한다. '무엇'이 '무엇'이든 일단 저질러 본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무엇도 알 수 없다'는 말은 좋은 방패가 된다.
매일이 변하고 '무엇'도 멈춰있지 않는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상상하지 못했듯, 후에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어쨌든 '무엇'은 되어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 무엇으로 남고 싶은가? 무엇으로 살아왔는가? 무엇이었는가? '무엇'이든 하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