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2일

"나의 색과 향"

by 리움

무색무취. 약간 그런 느낌이랄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색과 향은. 나는 조금 많이 화려한 옷을 입어도 화려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재주가 있다. 형광색이 커다랗게 프린트가 된 옷을 입고 다녀도, 내 옷이 형광색이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나는 나를, 눈에 띄지 않게 하거나 잘 기억하지 못하게, 희미해질 수 있게 하는 재주가 있다. 나는, 희미한 인상의 나를, 꽤 즐겁게 바라본다.


한국 사람들은 무슨무슨 유전자 때문에 체취가 진하지 않다고 한다. 한국 사람인 나는 체취가 거의 없다. 인공적인 향을 좋아하지 않아서, 향이 많은 화장품들도 사용하지 않고, 당연히 향수도 뿌리지 않는다. 향기로 누군가를 기억하는 광고를 보며, 나에게 향이 없어서 사람들이 나를 잘 기억하지 못하나,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었을 때, 꽤 흥미로웠다. '향수'의 그르누이는 나란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사람들이 나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데에는, 평범한? 인상이 강하지 않은? 뭐 그런 외양이 크게 작용하리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런 외양은, 아주 화려한 모양이나 색상의, 옷이나 액세서리도 무난하게 만들어버리고는 한다. 나의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패션 센스를 가졌고, 그런 센스로 자신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데 거리낌이 없던 사람이다. 예쁘고 화려하게 생긴 외모 덕에 사람들 시선을 꽤 끄는 사람이었지만, 그런 시선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딱히 패션에 관심이 없어 사복이 거의 없던 어린 나는, 사복을 입어야 하는 자리에 언니의 옷들을 빌려 입고 나가고는 했다. 나는 대학에 가서도 언니 옷을 꽤 잘 빌려 입고는 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입은 언니의 옷들이 튀는 옷이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일곱 빛깔 청바지를 골고루 입고 다니면서도, 그 옷들이 튄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실제로 내가 입으면 딱히 튀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나를 무색무취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 한다. 지금까지 경험을 바탕으로 대중 속에서 쉽게 묻히고 쉽게 기억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나는 그런 나에게 매우 만족을 하면 산다. 손님 응대가 적극적인 상점에 가서도 조용히 구경하다 사고 싶은 물건만 사고 나올 수 있고, 덤벙거리는 성격 탓에 자잘한 몸개그를 해도 사람들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지 않는다.


이런 무색무취의 편안함, 꽤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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