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3일

"나의 낯"

by 리움

나는 눈이 짝짝이다. 한쪽은 겉쌍꺼풀이, 한쪽은 속쌍꺼풀이 있다. 속쌍꺼풀이 진 눈은 쌍꺼풀이 안쪽으로 말려 눈이 더 납작해 보였다. 겉쌍꺼풀이 진한 것도 아닌데, 눈 크기 차이가 크게 느껴졌고. 눈이 비대칭이니 얼굴도 비대칭으로 보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진한 색의 굵은 뿔테안경을 쓰고 다녔고, 거기다 시력이 안 좋아서 안경의 굴절률이 높아, 짝짝이 눈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었다. 문제는 안경을 벗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수능을 끝내고 렌즈를 처음 맞췄다. 그리고 내 눈이 심한 짝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외모에 민감한 나이였다. 사실 수술을 하고 싶어 엄마를 조르기도 했고, 엄마의 허락도 받았었다. 그런데 본격적인 대학 생활에 들어서고, 화장을 하고 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짝짝이 눈이 부각되지 않았다. 본인이야 크게 느껴졌겠지만, 원래 나머지 한 눈도 큰 눈이 아니다 보니 본래 크기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던 것도 같다. 하루하루 놀기 바쁘다 보니, 쌍꺼풀 수술 생각이 쏙 들어갔다.


나는 얼굴에 불만이 많았다. 눈도 코도 입도 얼굴 크기도, 온통 불만 투성이었다. 불만을 모두 없앴다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얼굴이 되어 버렸겠지만, 어느 순간 그냥 '이 정도면 됐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어딜 가서 예쁘다는 소리도 못 듣지만, 못생겼다는 소리도 안 들으면 된 거지, 꼭 그림처럼 예쁘지 않아도, 나는 나름 매력적인 얼굴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예쁜 걸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나의 예쁘다는 기준은 아주 포괄적이며 아주 부분적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예쁜 것도 좋고, 콧대나 손끝, 곧은 척추나 맑은 눈동자가 예쁜 것도 좋다. 나는 예쁜 것을 찾아내는 재주가 아주 뛰어나다. 나는 '낯'이란 겉모습만 보고, 사람의 아름다움을 판단한다. 하지만 사람의 아름다움이 그곳에만 있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낯'이란 게 참 중요한 세상을 살고 있구나. 조금 더 가꾸어진 '낯'이 사회의 선택을 받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요즘 또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예쁨이 꼭 겉모습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도 겉으로 보이는 '낯'으로 세상을 평가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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