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여행"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나는 계속 여행길에 오를 것이다. 여행은 낭만이다. 낭만은 현실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실현된다.
좁은 흙길이다. 길 양 옆에는 작은 고랑이 있고 논밭이 있고 텃밭이 있고 나무와 돌과 그리고 낡은 집이 있다. 좌우를 돌아보면 시야 끝에는 산일지도 모르는 언덕이 있다. 그리고 정면에는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있다. 사람은 없다. 소리도 없다. 고요한 흙냄새 풀냄새 그리고 멀리서 풍겨오는 비릿한 바다 냄새, 냄새만 가득하다. 아! 그리고 조금 가쁜 나의 숨소리.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걷고 있다. 물론 이 길 끝이 바다에 닿는지는 아직 모른다.
사람들은 여행에서 무엇을 찾을까? 새로운 경험? 인연? 나의 여행은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묵은 것들의 되새김이라야 옳다. 온통 낯설기만 한 여행지는, 온전히 혼자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계에 떨어진 지구인처럼, 모든 것이 내게서 배제된다. 그리고 '나'만 남는다.
미래보다 과거에 닿아 있는, 오래된 주머니에서는 끊임없이 지난 조각들이 삐져나온다. 그리고 그런 조각들을 하나씩 낯선 곳에 버려둔다. 주머니가 텅 빌 때까지, 털어내려는 몸짓이다. 그리고 새로운 조각은 눈과 마음에만 담는다. 후에, 눈과 마음에 담긴 조각들이, 지난 주머니에 남겨져, 오래된 조각이 되겠지만. 주머니를 털어내는 일에 몰두해 본다.
낯선 곳에서는 내가 쌓이지 않는다. 내가 남지 않는 곳, 나에게만 남아 있을 곳. 나에게 여행지란 그런 곳이다. 지난 조각들을 버려도 흔적이 되지 못하는 곳. 나의 낭만.
그렇지만 나는 안다. 나의 주머니는 털어낸 만큼 다시 쌓이고 있을 것이란 것을. 묵은 것들이, 비어진 주머니에, 또, 흘러들어 가, 다시, 낡은 조각들을 쌓아가고 있을 것이란 것을. 나는 '나'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나'를 털어 버리고, 더 무거운 '나'를 짐 지고,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