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시골에는 유독 눈이 자주, 그리고 많이 내린다. 폭설이 예보되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깊은 시골은 아니지만, 이곳은 눈을 직접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거주할 때는 눈 치우는 걱정이 없었다. 걱정이 아니라 눈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아파트에서는 경비아저씨들이 고맙게도 치워주셨고, 도로에는 제설차가 있으니까.
시골은 다르다. 단독 주택이 대부분인 이곳에서는 폭설이 내리면 차가 다닐 수 없기에, 얼어붙기 전에 이웃들이 함께 모여 눈을 치운다. 대부분 나이 든 어르신 들이라, 젊은 축에 속하는 나는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갱년기의 몸도 버틸 수밖에 없다. 눈앞에서는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열심히 눈을 치운 후 며칠 동안 허리가 아파 고생한 경험이 여러 번이다. 낭만이었던 눈이 양평에서의 첫겨울부터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쓰레기로 변했다.
내 집 마당에는 큰 벚나무 세 그루가 울타리 안에서 버티고 있다. 가을이면 낙엽이 끝도 없이 떨어진다. 첫해 가을에는 낙엽을 울타리 밖 통로로 생각 없이 쓸어버렸는데, 앞집 할아버지께서 보시더니, 길로 낙엽을 쓸어내면 안 된다고 하신다.
순간 앗차 싶었다. 내 집만 신경 쓰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배려가 없었다. 그걸 당연하게 여겼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반면 할아버지는 종종 우리 마당 앞까지 쓸어주셨다. 그 뒤로는 울타리 밖 길가까지 깨끗이 쓸었다.
이 마을에서는 작은 배려들이 일상이다. 아이들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사람들은 처음 만난 이웃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이름도 전화번호도 어느 집에 사는지 조차 정확히 모르는 이웃들이다. 처음 왔을 때는 문화충격이랄까, 이런 분위기가 낯설어 생소했지만, 서울에서 느끼는 삭막함보다는 인간적인 것 같아 오히려 더 좋아지고 편안해졌다.
앞집 할머니는 텃밭을 제법 크게 일구신다. 봄이면 상추와 온갖 쌈채소, 호박 등등을 자주 챙겨주신다. 윗집 아주머니는 꽃을 좋아해서 온 집안이 식물원처럼 몹시 아름답다. 삽목 한 꽃가지들을 우리 집 울타리 앞에 심어 주기도 하고, 가지치기하여 정리한 꽃들과 예쁜 화초들을 종종 나눠주신다. 꽃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그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감사히 받는다. 서울집에 있을 때 집에 문제가 있으면 카톡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나의 텃밭과 꽃밭이 소꿉놀이 수준이라,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소품들을 답례로 드렸다. 이유 없이 주고받는 채소와 작물들, 그리고 미소 띤 얼굴들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끼리 모여 형성된 마을이라 모두가 이방인인 동시에 모두가 원주민들이다.
서울 아파트에서는 옆집 이웃인 걸 익히 알면서, 에레베이터 안에서 만나도 서로 모른 척한다. 우리 층에 올라오면 각자 흩어져 현관문의 번호키를 터치한다. 그 순간 등이 따갑지만,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면 내 공간 안에서만 살아간다.
동시에 두 세계를 오가는 삶이라 더욱 비교가 되고 피부에 와닿는 부분들이 많다. 처음에 시골에 집을 마련했을 때는 나만의 공간에서 홀로 사색하고 자연과 함께 조용히 지내겠다는 생각으로 내려왔지만, 실생활은 그렇지 못한 면도 있다. 성격이 극도로 내성적이거나 낯을 많이 가리는 독자라면 전원살이를 신중히 고려해 보기를 권한다. 홀로 고립된 장소가 아니라면 시골은 이웃과의 교류와 도움이 필요한 곳인 것 같다. 필요할 땐 도움을 받고, 한편으론 이웃에게 도움을 주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따져보면 인류의 삶이란 원시시대부터 원래 그래왔던 것이 아니던가?
어디든 정도는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어 온기를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