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밥과 자연이 가르쳐준 것

by 리케

구수한 밥 냄새에 담긴 소소한 행복


밥을 태웠다. 뜸이 드는 사이 책 한 페이지 읽을 요량으로 딴짓을 하다가, 탄내가 날 때까지 집중해 버렸다. 구수한 밥 탄내가 온 집안으로 채워진다. 시골집에서는 냄비밥을 한다. 전기밥솥 구매를 고민하다 미루기를 반복했지만, 누룽지를 좋아하는 내게는 이 방식이 더 잘 맞는다. 그렇게 벌써 3년째 나의 선택이 되었다.

누군가는 매번 냄비밥을 불편하게 어떻게 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주부입장에서는 밥처럼 쉬운 게 또 없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갓 지은 밥 냄새는 세상에서 가장 향기롭다.


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의 골목에서는 밥 탄내가 자주 났었다. 그때마다 '어디서 또 밥을 태우네' 하시며 엄마 아빠가 웃으며 얘기하곤 했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까지 신나게 놀다 보면 어느새 밥 하는 냄새가 골목 여기저기서 풍겨 나오기 시작한다. 얼마 후 드라마 '응팔'에서처럼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선정아~~ 밥 먹어'


노느라 정신 팔려서 안 들어가면 엄마가 대문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또 한 번 외친다.


"선정아! 밥 먹으라니까!"


텃밭에서 찾은 자연의 맛


냄비밥의 구수한 추억처럼, 시골의 먹거리도 투박한 듯 하지만 그만의 특별함이 있다. 시골에서는 주변환경 때문에 먹거리가 단순하고 소박하다. 도보로 쉽게 갈 수 있는 편의점이나 마트가 주변에 없기 때문에 과자나 음료 등등 가공식품을 접할 기회가 적다. 나는 그것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마트에 가서도 일부러 구매하거나 쟁여놓지 않는다.


서울집에 올라오면 아들이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를 사놓는데, 좋아하지 않지만 자연스레 먹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의지도 중요하겠으나, 가공된 식료품들이 가까이 있는 환경 탓도 있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시골에도 자연에서 온 간식거리가 있다. 우리 집은 텃밭이 작고 4도 3촌이라 방울토마토를 소소하게 심었는데, 지나칠 때마다 한두 개씩 똑 따 수돗가에서 대충 씻어 먹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이, 풋고추 등 채소를 간식거리로 생각할 수 없겠지만, 출출할 때 먹으면 신선해서인지 더 맛나게 느껴진다. 텃밭에서 갓 따낸 오이를 우적우적 씹어 먹으면, 적당한 형용사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몹시 향기롭고 맛나다.

텃밭에서 갓 따낸 채소의 풍미는 마트 채소가 결코 따라올 수 없다.


건강한 식탁, 시골이 준 선물


첫해 텃밭에서 수확한 상추와 깻잎의 향이 무척 강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고기 없이 쌈채소를 먹는 건 상상이 안되었는데, 요즘은 쌈채소에 밥과 쌈장만 넣어 먹는 것을 즐긴다. 그것들은 첨가물 범벅인 도심의 먹거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신선함과 독특함이 있다.


시골에서 지내는 나날들이 길어지게 되면서 식성이 변하여 어느새 가공식품은 거의 먹지 않게 되었다. 건강한 먹거리를 접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이 환경에 감사한다.


텃밭을 지금보다 더 넓게 일구고, 사계절 내내 채소를 기를 시간적인 여유가 주어지기를 희망한다. 겨울에도 추위에 강한 채소를 기를 수 있는 썬룸이나 비닐하우스를 갖고 싶다. 식료품을 사계절 내내 저장할 수 있는 지하 창고도 있었으면 좋겠다.

현재 상황에서는 현실성 없는 꿈일지 모르겠으나, 살아오면서 불가능했던 꿈들이 종종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점을 상기한다.


새봄을 기다리며 피어나는 설렘


어느덧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새봄이 오면 올해 텃밭에는 어떤 채소들을 심어볼까? 올해에는 그동안 시도해보지 않았던 고구마와 옥수수를 포함시켜 볼 예정이다. 즐겨 먹고 좋아하는 작물들이기 때문이다.


마치 여행을 앞두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며 설레는 마음처럼, 새봄을 기다리는 지금이 참 행복하다.

아직 이르지만, 마음은 벌써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 한가운데를 거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