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의 꽃처럼
꽃을 바라보면 모든 상념이 잊히며, 마음속엔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꽃을 사랑하는 이유다.
일본에서 살던 신혼 시절,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지만 마트에 가면 작은 꽃 한 다발을 사 오곤 했다. 필요한 살림살이만 놓여있던 작은 공간에, 꽃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마술을 부려주었다.
꽃을 직접 내 손으로 가꿀 수 있다는 것이, 시골집의 가장 큰 선물이다. 서울로 올라가야 할 때면, 꽃을 두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몇 번씩 뒤돌아 보게 된다. 짧게 피었다 지는 꽃은, 내가 없는 사이 홀로 져버리기도 한다. 한껏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지켜보지 못하고 되돌아왔을 때 시들어 버린 꽃을 보면, 아쉽기 그지없다.
조물주는 독보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꽃들의 미묘하게 다른 모습들이 늘 감탄스럽다.
개성도 제각각이라 마치 다양한 인격체처럼 느껴진다. 꽃에 대하여 잘 모를 땐, 장미가 최고인 줄만 알았다. 세상에는 예쁜 꽃들이 수도 없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기쁜 기다림
올해는 채송화 씨앗을 뿌려봤다. 기다려도 새싹이 나오지 않아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낮달맞이꽃을 심었다. 한 달여가 지나갈 무렵, 잊고 있던 어느 날 새싹들이 무수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때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윗집 아주머니가 준 바이올렛은 정성껏 보살폈지만, 잎만 무성할 뿐 꽃이 피지 않았다. 화분이 작아져 분갈이를 해주었더니, 몇 주 후 꽃봉오리들이 드디어 맺히기 시작했다. 천천히, 천천히 꽃이 피어날 준비를 하더니, 3주 이상 예쁜 꽃을 보여주며 피고 지고를 반복했다.
긴 겨울이 지나 바깥으로 내놓았던 베고니아.
군청색 잎사귀로 건강해지며, 앵두 같은 새빨간 꽃을 피워주었다.
짓밟혀도 꿋꿋이 자라 신비로운 보랏빛 꽃을 피워주는 강인한 아주가도 있다.
물을 좋아해 자주 주었더니 어느 날 시들어버린 바늘꽃은 못내 안타까웠다.
선물 같은 꽃, 떠나는 꽃, 머무는 꽃
껄껄이풀, 좀씀바귀, 봄까치꽃, 애기똥풀, 봄맞이꽃처럼 이름도 모양도 앙증맞은 예쁜 야생화들도 있다. 심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불쑥 날아와, 어느 날 꽃을 피워주는 선물 같은 존재들이다.
시골집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벚꽃은
가장 아름다울 때 눈처럼 바람에 흩날리며 미련 없이 떠난다.
반면 사계국화는 사계절 내내 꽃을 피우며 제 명이 다할 때까지 곁에 머물러준다. 하얀 눈을 맞으며 안간힘을 써서 버텨주는 사계국화는 애잔하면서도 아름답다.
꽃은, 삶을 닮았다
꽃들에 사람이나 삶을 대입해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저들마다 싹이 움트는 자신만의 시기가 있고, 긴 기다림 끝에 준비한 만큼 오래도록 아름다운 꽃을 보여준다. 온실보다 노지에 있을 때 더 강해지고, 짓밟히고 상처를 받아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피어난다.
민들레처럼 누군가에게는 잡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약이 되기도 있다. 사랑도 지나치면 독이 되고, 자신에게 맞는 그릇이 품어주어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모르는 사이에 살짝 찾아와 기쁨을 주는 선물 같은 존재도 있다. 가야 할 때 떠나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오래도록 곁에 머물러 주는 고마움도 있다.
인생과 깨달음에 대하여 자연은 언제나 답을 건넨다. 누구에게 굳이 배우지 않아도 자연이 바로 선생님이다.
한 제자가 스승에게 깨달음이 무엇이냐고 묻자, 선사는 말했다.
"뜰 앞의 잣나무다."
깨달음과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꽃처럼...
내 앞의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