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꿈 꾸는 방법

열린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by Riley

“당신은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안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노력이 부족할 뿐이지, 노력하면 다 됩니다.”

“최대한 큰 꿈을 세우고 자기 자신을 믿으세요.”


다 좋은 말이다. 유사한 충고를 하는 책과 강의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나 또한 학생시절 슬럼프에 빠지면 그런 책들을 들춰 보기도 했고 실제 거기서 희망과 용기를 얻기도 했다. 나는 지금 이런 조언을 칭송하거나 경시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가끔씩은 우리 모두가 너무 목표 지향적인, 치우친 주문만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아을 지울 수 없다.


세상에는 내 맘대로 안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다리를 꼬고 앉는 버릇과 같이 작은 습관조차 바꾸기 어려우니 말이다. 현실적으로 타고난 나의 특정 능력이 이루고자 하는 특정 목표에 부족할 수도 있고, 내가 최선을 다 한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더 원대한 계획을 세우라고, 실패한다면 나의 의지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맘 먹으면 다 할 수 있다고 강요하고 있으니, 가끔씩 ‘나는 루저인가’라는 생각이 드는게 이상하지 않다.


하나의 원대한 꿈을 가지고 매진하는 것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을 사는 방법은 수도 없이 다양하며, 나의 이런 꿈을 달성할 수 없다면 저런 꿈으로 수정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내 남동생은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싫어했다. 대신 태권도, 쿵푸, 유도, 검도, 수영 등 다양한 스포츠를 하면서 튼튼하게 자랐고 항상 주위에 친구들이 많았다. 시험이 끝나고 집에 오면 항상 이번 시험 엄청 잘 봤다고 떠벌리며 마냥 즐거워했지만, 채점 결과는 늘 예상과 달랐다. 어느 공업고등학교에 지원했는데, 경쟁이 치열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운 좋게 떡하니 붙었고, 고3때는 학급 반장까지 했다. 대학 진학 시에도 경쟁이 치열해 떨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운 좋게 떡 하니 붙었다. 한 학기를 다녀보더니, 적성에 안맞는다며 과감하게 학업을 중단했다. 난 대단한 멘탈이라고 생각했다.


‘동생도 꿈이 있어야 할텐데 큰일이네,’ 나는 진심으로 걱정하며 중얼거렸다.


그 후 동생은 요리를 하겠다며 호텔조리학과가 있는 학교를 찾아 알아서 진학했고, 늦깍이 신입생으로 동급생들에게 형, 오빠 소리를 들으며 과대표까지 했다. 어느 학기에는 제빵 수업시간 실습 결과물인 생크림 케이크, 페이스트리, 카스테라 등 다양한 먹거리를 집에 가져왔는데, 난 그 수업이 있던 매주 수요일에는 퇴근 전부터 동생의 귀가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졸업 후 동생은 대기업 입사에는 실패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고급 중식당에 취직해서 설거지 작업부터 칼질, 육수내기, 면뽑기, 튀김 등 주방장이 되기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거치면서 점점 전문가로 성장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직업이라 부은 다리에 핏줄이 튀어나오고 겨울에도 땀에 흠뻑 절은 머리로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지만 동생은 불평 한번 없었다. 여자처럼 하얗고 고왔던 손과 팔은 온통 칼에 베이고 기름에 데인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동생은 역시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년 동안 시키지도 않았는데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재료 입고 상황을 챙기고 거드름 한번 피우지 않고 매일 피로한 몸으로 늦은 시간 귀가했다.


그런 동생은 매 주말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놀다가 새벽에야 집에 들어오는 게 다반사였다. 나는 그때마다 동생에게 훈계했다. “OO야, 사람이 젊은 시절에 목표를 세우고 저축도 하고 목표에 맞는 준비를 해야지, 주말이라고 아무 생각없이 살면 어떻하냐. 미래의 꿈에 대해 생각해봐.” 동생은 반복되는 나의 잔소리에 역시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후 동생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 꿈을 이루었을까?


동생은 수년간의 주방 근무 이후 독립할 만한 자신감이 붙을 무렵, 태국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모아 놓은 돈도 많지 않았고, 해외에 살아본 경험도 전무했지만 과감히 사직서를 내고 영어와 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태국에서 <OO반점> 주방장이자 사장님이다. 작은 가게이지만 오픈 초기에는 고객 중 한국인이 80%였는데, 지금은 70%가 현지인일 정도로 인정받았고, 로컬 인플루언서가 맛집 탐방으로 소개하는 곳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동생이 나보다는 훨씬 세련된 방법으로 본인만의 꿈을 꾸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던 것 같다. 장례식, 결혼식 등 집안 대소사에 가족처럼 등장하여 마음을 함께하는 동생 친구들을 볼 때면 “꿈”을 운운하던 내가 작게만 느껴진다. 동생에게 “꿈”은 먼 미래가 아닌, 하루하루 현실에 최선을 다해 충실하면서, 때가 되면 꿈을 수정도 했다가 실패도 했다가, 나중에는 과감하게 행동에 옮기는, 내가 훈계하며 세우길 강요했던 “꿈”보다 더 현실적이었던 것 같다.


꿈은 계획되기도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생기기도, 중간중간 수정되기도 하다. 먼 미래의 이야기일 필요도 없고 원대할 필요도 없다. 운 좋게 실현될 수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또 만들면 된다. 실패에 위축되기 보다는 아랑곳하지 않는 동생처럼, 원하는 일을 하다 보면 커지기도 하고 촘촘한 계획없는 베팅을 통해 실현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꿈을 마치 대기의 공기처럼 무한대로 가질 수 있다. 긍정적인 태도와 열린 마음만 있으면 된다.


코로나때문에 난 아직 태국에 있는 동생 가게에 가보지 못했다. 내년 즈음에는 <OO반점>에서 짜장면, 짬뽕, 탕수육을 전부 먹어보는 즐거운 꿈을 꾼다. 나는 앞으로도 수많은 크고 작은 꿈을 꿀 것이다. 실패할 때도, 성공할 때도 있겠지만, 계속 그리고 즐겁게 꿈을 꿀 계획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은 행복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