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행복하신가요
행복 이데올로기에 대한 질문
질문 하나: 다음 항목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젊음, 미모, 돈, 명예, 인기, 지적능력, 타고난 언변, 스타일, 좋은 성격, 뛰어난 스펙.
정답: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들.
그렇다면, 나이듦도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나이 드신 분들이 세상에서 가장 부럽다고 말하는 분을 만났다. 온화한 미소와 특유의 따스한 아우라로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만드시는 분이다. 그녀는 투병 생활을 하시는 약 1년 동안 동영상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시면서 세상에 따뜻한 흔적을 남기고 가신 분이다. 작년에 우연히 동영상으로 만나게 된 분인데, 내가 만났을 때는 이미 세상에 안계셨다.
“요즘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어르신들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요. 저 나이때까지 살아오셨다는 게 너무 부럽습니다.”
동영상 횟수가 올라갈수록 그녀의 얼굴은 더 수척해지고 통증은 더 심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아이처럼 밝기만 하다. 실제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구독자 친구들을 위해 통증의 고통 때문에 입원한 병상에서도 걱정하지 말라며 이야기를 나누신다.
입술 조차 움직이기 버거운 상태에서도 그녀는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려 카메라를 켠다. 눈꺼풀의 무게가 그녀의 작은 어깨를 짓누른다. 천근만근한 눈꺼풀이 열릴 때마다 드러나는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서는 여전히 사랑과 반가움이 전해진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이 가장 작다고 하죠. 불행하면 자기 손해에요. 일분, 일초도 여러분 자신을 불행에 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이 안됐으면 좋겠다던, 그러나 혹시 모르니 이 영상을 찍어 인사한다던 그녀는, 그 영상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작년 5월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안녕!”이라는 밝은 인사와 함께.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고민의 정도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각자 내 고민이 세상에서 가장 큰 법이니까. 밥시간을 놓쳐서 울고 있는 아기의 배고픔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의 두려움 보다 더 작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자기자신의 고통을 더욱 크게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어느 명상 그루는 자기연민은 따스한 눈빛으로 자기자신을 바라보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했지만, 그것이 과해지면 해결책 없는 자기 한탄으로 빠질 수 있다.
나는 키가 작다. 어려서부터 내 안에 열등요소가 됐던지 초등학교 일기장을 보면 키 작다고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난다. 당시에는 꽤나 심각한 고민이었나 보다. 지금도 평균 이하의 신장때문에 기성복 바지 길이 수선이 잦은 것은 다소 불편하다. 그러나 이코노미 티켓으로도 장거리 비행 시 앉아서 전신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점은 너무 좋다.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하고, 장점이 짐이 되기도 한다. 나의 단점을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완벽한 모양으로 사는 이는 1인도 없다. 나는 나의 모양으로 내 인생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습관처럼 묻는다.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답을 하는데 아주 잠깐이라도 고민을 했다면, 다음을 천천히 읽어 보자:
“인간이 행복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는 작업반장이 휘두르는 몽둥이로 한 대만 맞아도 사라질 한심한 이데올로기이다.”
구소련의 강제 노동 수용소의 살벌한 상황을 표현한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말이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