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야 가능한 것들

삶의 "강약"이 필요하다

by Riley

골프는 나에게 참 어려운 운동이다. 필드에 처음 나간 때가 3년 전인데, 몇 달 동안만 쉬어도 골프채를 잡으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최근 다시 연습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깨달음은 스윙을 할 때는 무조건 힘을 빼야 한다는 점이다. 골프채로 공의 방향을 조절하려고 드는 순간 공은 공중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뜨지 못하고 잔디 위의 포켓볼이 되고 만다.


어떤 지인이 승용차를 몰고 가는 중 뒤차가 심하게 차를 들이받았다. 차체가 튼튼하기로 유명한 제조사의 승용차가 폐차장으로 보내졌다고 하니 충격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간다. 놀랍게도 운전대를 잡고 있던 지인은 사고 직후 스스로 차 밖으로 걸어 나왔다고 한다. 그는 어떻게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를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마침내 유레카를 외쳤다. 충돌의 순간, 바람에 몸을 맡기듯 온몸에 힘을 뺐던 것이 가장 크게 기여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 너무 피곤해도 누우면 온몸의 신경 구석구석이 긴장되어 있음이 느껴지고 수 시간 동안 몸을 뒤척거리다 보면 새벽 4~5시가 되기 일쑤였다. 오래 전부터 관심있던 명상을 시작했다. 주의를 내 몸에 집중하고 온몸의 근육과 신경을 이완한다. 어느덧 나도 모르게 잠이 드는 이상한 체험을 했다. 그 때도 생각했다. "힘을 빼니 잠이 오는구나.” 수면이 집착의 대상이 되니 누워 있어도 온 몸과 정신에 힘이 들어갔던 게 이유였던 것이다. 누워있는 목적이 잠이 아닌 명상이 되니 잠이 스르르 오는 것이다.


집중이 필요한 때 긴장은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노래나 영화에도 강약이 있어야 감동이 커지 듯, 삶에 있어서도 긴장이 있다면 주기적인 힘빼기는 필수다. 나도 한때는 아침형 인간이 되어 남들보다 하루를 빨리 시작하고 주말에는 운동이나 공부를 통해 내외적 체력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쉬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해서 물론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들도 엄청 많다. 내가 선택해서 그렇게 한 것이기에 후회는 없고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도 같지만, 나이가 들수록 힘을 빼는, “강약”의 “약”에 대한 중요성은 더 크게 다가온다.


어떤 정신과 의사가 40대 초반에 파킨스병을 진단받았다. 고3때 가족을 잃은 슬픔을 딛고 전력 질주하여 의사가 됐는데, 너무 억울했다고 한다. 화장실에 한번 가는 것도 10분 이상이 걸릴 정도 자유롭게 몸을 움질일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되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 왔단다. 나뭇잎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물방울들, 뜬 눈으로 지새운 밤을 지나 새벽에 해가 뜨기 직전의 설레는 하늘 색깔, 금붕어가 먹이를 오물오물 먹는 모습, 어둠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 등. “강약”의 “강강강” 위주로 살았던 때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늘 곁에 있었지만 눈길 한 번 안줬던, 소소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그게 가능했던 건 이 의사의 초긍정적 태도 영향이 크겠지만, 그녀 역시도 힘을 빼고 나서야 눈과 귀가 비로소 뚫린 것이다.


봄이 왔다. 창문 넘어 보이는 나무에 푸르른 나뭇잎들이 봄바람에 춤 춘다. 따스한 햇살이 나뭇잎에 반사되고, 나뭇잎 사이사이로 통과된 긴 빛이 얼굴을 내밀어 여운을 더한다. 톡 쏘는 사이다를 마시며 아무 생각 없이 풍경에 묻혀본다. 평년보다 빠르게 찾아온 봄과 평년보다 많이 내렸던 봄비에 이미 떨어져버린 벚꽃 잎은 아쉽지만 그것 그대로 좋다. 힘을 주고 있을래야 그럴 수 없는 평범하고 평온한 주말 오후에, 힘을 빼고 살랑살랑 노래 부르는 아이유의 <라일락> 가사를 음미한다.


“라일락 꽃이 지는 날 굿바이,

어느 이별이 이토록 달콤할까.”


노래 속 이별 대상이 모두를 지치게 하고 있는 코로나였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의 적, 바이러스에 맞서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의 방역을 하며 살아가는 지구인들을 응원한다. 힘을 빼고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코로나도 우리 곁을 굿바이 달아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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