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너나 신경 쓰세요

내 우주 밖의 일

by Riley

엄마는 우리 삼남매가 말기를 알아듣기 시작할 어린 시절부터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거짓말이라고 가르치셨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게 모라고?”

“거짓말!”


나는 정말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던 중 꼬마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아마 설 이후였던 것 같다. 친지들에게 받은 세뱃돈으로 지폐 한뭉치를 모았고, 엄마에게 당시 집 근처에 있었던 새마을금고에 뭉치를 넣어 달라고 부탁드렸다. 엄마는 알겠다고 하셨다. 그리곤 며칠이 지나 엄마에게 확인을 했다.


“엄마, 내 세뱃돈 계좌에 넣어줬죠?”

“응, 그럼.”


그런데 며칠 후 엄마 지갑에 그 뭉치가 그대로 있다는 걸 발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그만 꼬마가 어떻게 그것을 발견했는지, 정말 그 발견이 맞았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어쨋거나 그 사건은 내게 정말 큰 충격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게 거짓말인데, 어떻게 엄마가 나한테 거짓말을 할 수 있지? 그 충격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걸 보면 나름대로 잘 극복했던 것 같다.


어린시절 그 작은 사건으로 엄마에 대한 믿음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정직하고 당당한 사람 중의 한명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그 충격 때문에 거짓말에 대해 항상 고민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물론 내가 “거짓말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그러하듯,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불편한 정도의 거짓말에 대한 양심이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선악의 원론적인 구분과 별개로 현실적으로도 거짓말은 불편하다. 자칫하다가 1번 거짓말이 2번, 3번, 4번으로 이어지고 거짓말 크기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눈덩이가 커지다 보면 그 안에 등장하는 소재, 인물, 사건 등이 더 확장되기 마련이고, 종국에는 내가 그 거짓말 속에 사로잡혀 정말 그 말을 믿게 될 지도 모른다. 무엇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누구에게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헷갈리는 상황까지 벌어질 것이다. 사태가 거기까지 가면 문제의 근원이 됐던, 가장 작은 1번 거짓말조차 주워담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사실이 되어야 내가 살 수 있다.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거짓말.


언젠가 직장 동료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아버렸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공식적인 사회활동을 시작한 지 30년을 넘었으니 이제 그 정도 타인의 자잘한 거짓말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나의 선의가 거짓말로 되돌아올 때 느끼는 배신감이 상당하다. 지나가는 행인이 아니라 믿는 사람이었기에 그 감정이 더 컸을 것이다. 그 거슬리는 감정을 퇴근 후 집까지 싸들고 왔다. 그 감정은 흘러흘러 거짓말의 원인이 혹시 나의 행적에서 비롯됐을까 하는 자책감에 까지 도달했다.


“내가 이 오밤중에 뭐하고 있는거지?”


문득, 그 상황이 너무 코믹하고 가볍게 느껴졌다. 거짓말의 주체자는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거짓말의 대상이 내 자신이라고 해서 내가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잘잘못을 구분하는 건 너무 큰 오버와 오지랖이다.


존밀턴의 말처럼, “우리 마음은 우주와 같아서 지옥이 천국이 되게 할 수도 있고, 천국이 지옥이 되게 할 수도 있다.” 내 마음, 내 거짓말은 내 우주 안에 있는데, 타인의 그것들은 다른 차원에 있다. 내가 신경 쓸 필요도, 능력도 없다. 주체자는 내가 심각한 마음으로 그의 거짓말을 해부하고 있을 시간에, 이미 그것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내 알 바가 아니다. 나는 관객이 되어 그냥 바라보고 지나가면 된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다 보면, 그 만큼 내 것에 집중할 에너지가 줄어든다. 타인의 거짓말까지 신경쓰기에 나는 너무 불완전하다. 깜찍한 작은 거짓말이 이렇게 큰 교훈을 새삼 일깨워 줬으니, 결과론적으로 순기능이 더 컸던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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