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외로움
현재 여기는 얼마나 아늑한지!
이순신은 전장에서 자신의 사지를 찾으며 적을 맞설 준비를 한다. 그는 거듭 강조한다. 나의 사지는 가장 끝이어야 한다. 그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야 한다.
임금은 온 백성이 들을 수 있는 길고 큰 울음으로 전쟁을 한다. 신하들은 임금이 울음이 멈출 때까지 따라서 운다. 임금의 전쟁에 칼은 없다. 그냥, 징징거리기만 한다. 장군의 아들은 적의 칼에 어깨가 갈라져 죽었다. 소식을 들은 장군은 혼자 조용히 소금창고에 들어가 흐느껴 운다.
존재의 목적이 적과의 싸움인 장군은 싸움에 대해 고백한다:
“싸움에 대한 기억은 늘 막연하고 몽롱했다.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번째 싸움이었다.”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김훈, <칼의 노래>
소설이라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실제 겪었을 여러 상황을 고려해보면 소설가의 언어를 빌린 장군의 고백은 허구보다는 사실에 훨씬 더 가까울 것 같다. 이순신의 언어, 그의 생각, 그의 행동을 읽으면서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리더의 외로움. 이순신의 결단력과 과감함은 ‘리더의 외로움’에서 나왔을 것 같다.
목적을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의 바다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장병들의 매 끼니를 걱정하며 하염없이 적을 기다리는 장군에게, 몇 점의 쇠고기를 먹으라며 보내는 현실감각 없는 임금에 대해 이순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과연, 무늬만 리더인 임금과 실질적 리더인 자신의 운명을 비교하며 한탄했을까. 이순신은 힘없이 약탈당하고 죽어가는 백성들을 보면서, 그 누구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었을까. 그는 오직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 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생사를 결정지을 전략을 세워야 했을 것이다. 치열하게 결단하고 살떨리는 지시를 내려야만 했을 것이다.
내가 사회 초년생 시절, 당시 나의 멘토이자 조직의 장이었던 분이 “리더”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나는 참 외롭다. 원래 리더는 외로운 거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이해가 안 가겠지만, 언젠가 나도 알게 될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10년하고도 몇 년이 훌쩍 넘은 요즈음 이순신의 독백에서 그 리더의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바다에 둘러싸여, 다가오고는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 적들을 느끼며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이순신. 총을 맞은 몸의 고통과 아들을 잃은 마음의 슬픔을 목구멍 뒤로 꾸역꾸역 넘기며 외롭게 군대를 이끄는 무인.
이순신처럼 날타로운 칼로 적과 싸우는 군대를 이끄는 리더만 외로운 건 아니다. 대기업 총수나 큰 정치집단의 대표, 국제기구의 의장 등과 같이 거창한 사람들만 외로운 건 아니다. 자식들의 끼니를 책임지는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 알바생의 시급을 책임져야 하는 소상공인, 반상회를 이끄는 동네대표 등 크고 작은 그룹의 안녕과 존망을 가장 최전방에서 이끌거나, 가장 최후방에서 막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외로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난 운 좋게도 아직 한 가정의 밥벌이를 전적으로 홀로 책임진다거나 어느 조직의 구성원들의 미래를 혼자 책임진 적이 없다. 혼자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프리랜서로 활동해본 적도 없다. 이순신 장군이 망망대해에서 온몸으로 느꼈을 ‘리더의 외로움’은 경험해본 적이 없다. 굳이 스스로 거기 들어가려 해번 적도 없다.
회사의 먹거리에 대해 항상 고민하시는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내 뒤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으로, 가장 끝, 그 경계선에 서 봐야 성장한다고. 뒤에 누가 없다고 생각해야 노련해진다고. 그 말씀에 고개 숙여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사장이 될 필요도 없고 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에 의해 사장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다. 집안일도, 회사일도, 작은 모임에서의 허드렛일도, 그 밖에 사람들이 모이고 대소사가 존재하는 집단에서, 우리는 리더의 역할을 자처할 수 있다.
내 자신에게 다짐한다. 나는 체질적으로 절대 리더가 될 수 없다며, 리더가 될 수 없는 백 가지 핑계를 만드느라 고민하지 말자고. 어짜피 리더의 역할을 처음부터 해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1598년,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갑옷을 입고 서있었던 노량에 비하면, 2021년 내가 서있는 대한민국의 현재 여기는 얼마나 아늑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