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학교를 향해 집을 나설 때, “학교 갈께요~!”라고 소리치며 나가면, 엄마는 바쁜 나를 불러 인사를 정정하고 가라고 주문하셨다. “갈께요”로 끝나는 인사에는 “온다”라는 말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다녀 올께요~!”
“온다”는 인사로 정정하고 집을 나설 때는 기분이 달라진다.
밥벌이를 중심으로 일상에 쫓기듯 살다보면 그냥 흘려보내는 것들이 많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 내가 하고 있는 이 말,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고 당연하게 여겨진다. 마치 어제도 했었고 내일도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처럼. 마치 오랜동안 원래 거기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봐요.
언제 밥 한번 먹어요.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 인생에서 또는 누군가의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는다. 또는 그게 마지막이었다는 걸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다.
지인들과 주고 받는 안부 문자도 마찬가지다. 습관처럼 서로 주고받는 짧은 말들도 당연히 여기고 흘려보내면, 주옥같은 그 말들은 허공에 흩어져 사라진다. 몇 초간의 파동을 끝으로 영원히 사라지는 말의 에너지다.
잘 지내.
건강 잘 챙겨.
보고싶다.
좋은 하루 보내.
축하해.
미안해.
힘내세요.
행복하세요.
언젠가부터 그런 말들이 무겁게 느껴졌다. 같은 말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온몸으로 그 말을 받아들이면 그 말에는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 말의 힘을 믿게 되면서의 변화다. 그렇게 되는 순간, 세상에 나를 향해 쏟아지는 긍정적인 글자들이 정말로 많음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의 조언 역시 가시 돋힌 잔소리로 생각하면 그 조언은 공중 분해되어 사장된다. 진심 어린 충고로 생각하고 취할 것을 취하면 공짜약이 된다. 이를 머리로는 알면서도 막상 나를 향해 쏟아지는 조언을 들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도망가고 회피하고 싶다. 혹시 그 조언이 나를 불편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닌가라는 감정까지 올라온다. 나의 성숙함과 지혜로움의 결핍이다.
당연하게 여기면 지루하고 재미없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순간,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창 밖의 오만가지 색깔이 살아나고, 매일 찾아오는 매 끼니 메뉴가 기다려지고 매 순간이 활기로 가득차다.
오늘은 동네에 있는 2천원짜리 커피집에 들러 가을 하늘에 맞는 따뜻한 카푸치노를 주문해 볼 예정이다. 커피 한잔 값을 지불하고 커피에 대한 감사의 말에 진심을 담아 말하고, 주인 양반의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을 깊이 음미할 것이다. 어떤 커피향을 경험할 지 기대된다.
다행히 결핍도 삶의 풍요로움의 요소가 될 수 있다. 나의 결핍을 말로 내밷은 이상, 새로운 가능성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