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란,
술 마시고 나눈 잡담을 글로 쓰는 것

2024년 1월 16일에서 1월 17일 넘어가는 새벽에 쓰다 미처 못 쓴

by 리르리안

오늘도 잠이 오지 않아 글을 한 마디씩 끄적여봅니다. 뭐, 끄적여본다는 건 직접 글씨를 쓸 때나 어울리는 말이지만, 아무튼 손가락으로 필기도구(?)를 잡고 이리저리 움직이면 글이 써지는 건 맞으니 아무튼 끄적인다고 해볼까요.




글을 쓰기 전이면 항상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어떤 내용으로, 어떤 방법으로, 손을 가만히 놓은 채로 곰곰이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오늘은 그 물음 끝에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왜 에세이를 쓰겠다고 생각했을까?’


다시 생각에 잠긴 채 눈을 감아봅니다. 잠시 고민, 커피 한 모금. 마침 며칠 전에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그 생각을 글로 옮겨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에세이를 왜 쓰기로 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에세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제 생각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저는 주 4회 30분짜리 팟캐스트를 만들고 있습니다(24년 3월 현재는 관둔 상태). 4일 모두 다른 코너로 만드는데, 그중 하루는 책을 소개하는 코너를 진행합니다. 코너 이름은 ‘베스트셀러가 뭐길래’ 지만,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가 생각보다 크게 변동이 없다는 걸 안 뒤로는 그냥 온라인이든 오프라인 서점이든 책방을 쭉 둘러보며 관심이 가는 책을 더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쓴 뒤에 저는 서점을 갔다 올 것 같네요.


서점에 가면 여러 책들을 수박 겉핥듯이 후루룩 지나가듯 책을 스쳐 지나가봅니다. 베스트셀러라고 걸어둔 책도 보고, 이리저리 돌아다녀봅니다. 그러면 연어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듯 저도 역시 본능적으로 에세이 코너를 찾게 됩니다. 인터넷에서 본 듯한 작은 글 모음집부터 유명한 인플루언서,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외국에서 몇 주 연속 베스트셀러였다던 유명한 에세이까지 다양한 에세이가 한 곳에 모여 각자의 매력을 뽐내고 있죠. 그 주변을 맴돌면서 에세이를 천천히 읽어보면서 저는 느낍니다. 에세이를 너무 어렵게 느낀 건 아닐까.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던 것이 고등학교 교내대회에서 쓴 시였고, 그때부터 저에게 글쓰기는 너무 어려운 — 소위 ‘각’ 잡고 써야 하는 진지한 — 것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에세이는 제가 가진 고정관념을 팍 깨게 해 주었죠. 나쁘게 말하면 ‘이딴 것도 책으로 낼 수 있나?’ 싶은 것이고, 좋게 말하면 ‘정말 눈에 쏙쏙 들어오는구나!’ 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에세이, 나아가 글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글쓰기는 쉬워야 되는구나, 쓰는 사람도 쉽게 쓸 수 있어야 하고 읽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어야 하는구나, 글을 준비하는 과정은 길고 진지할지라도 글을 쓸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쓰면 되는구나.’


그렇게 제가 내린 ‘에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친구와의 술 마시며 한 잡담을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잘 정리해 놓은 글.”


누구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상관없습니다. 그것마저도 제가 생각하는 에세이의 정의에 잘 부합하는 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친구와의 취중 잡담에 진지하게 팩트 체크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어차피 말 한 사람도 말을 들은 사람도 내일이면 잊어버리거나, 적어도 잊어버린 척하게 될 텐데 말이죠. 술집 공기에 흩어져 사라지는 잡담처럼 이 글도 그렇게 한번 읽고 머릿속에서 아무 내용도 기억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럼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왜 에세이를 쓰고, 읽게 되는가?”

그것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제가 내린 정의에 있습니다.

“친구와 잡담했다는 그 기억, 그리고 그때 느꼈던 느낌만 가지고 가면 된다.”

술 마실 때 무슨 말을 했는지는 가물가물합니다. 하지만 술 마실 때 친구와 대화하면서 만들어졌던 우정의 기운, 혹은 싸웠기 때문에 들었던 분노의 기운, 그 자리에서 벌어졌던 모든 희로애락의 감정은 술을 마신 뒤에도 각자의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그 ‘기운’을 에세이에서 얻어가는 것입니다. 글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냥 글이 하고자 하는 말을 우리가 느끼면 그걸로 에세이는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에서 10년 동안 일했던 사람의 에세이 —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에서도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 사람이 거기서 뭘 했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경험을 통해 느꼈던 예술과의 교감, 동료와의 유대감, 그리고 우울했던 삶을 극복해 나가는 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에세이는 그 내용이 충실한 것보다는 쉽게 읽히는 게 중요하고, 그래서 쉽게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술술 읽다 보면 이 사람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는 알 수 있는 겁니다.




밤에 쓴 글을 한낮에 정리하려니 뭔가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느낌입니다. 그나마 밖에 비가 내려서 좀 괜찮은지도 모르겠네요. 오늘은 이렇게 글을 줄이겠습니다.


그럼, 모두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리르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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