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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랴 Dec 21. 2023

한껏 엄살 부리기로 한지는 좀 됐다

조금 아프면 아야, 하고 일단 말해보자. 아픈 거 티 안 내고 다 쓸데가 없다. 엄살쟁이 하지 뭐.


언젠가 진공청소기 돌리다가 손이 꺾여서 손톱이 수직으로 뽀각, 아작난 적이 있는데 피가 뚝뚝 났지만 단말마를 지르는 게 시간 낭비 같아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휴지로 대충 감고 걸레질까지 마친 후에 응급처치하러 간 적이 있다.


그냥 감기인 줄 알고 방치하다가 폐렴이 돼서 입원해서 오래 고생한 적이 있다.


오래된 친구가 있었을 때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너는 어지간하면 아프다는 소리를 잘 안 하니까. 아프다고 말하면 많이 아픈 거잖아.



차츰차츰 많은 것이 망가지고 지금도 사라지고 있지만 지금은 조금 아파도 우스꽝스럽게라도 아야, 하고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려본다.


무서운 게 나오거나 깜짝 놀라면 더 깜짝 놀라는 제스처를 취하거나 영혼 없이 으악, 꺅, 어머, 정도는 말하게 됐다. 하다 보니 습관이랑 감성이 늘었는지. 조금 영혼이 없던 것도 조금 영혼이 생겼다.


속으로 하는 생각이란 간단하다.

난 아픈 게 맞다. 난 놀란 게 맞다. 나는 무섭다. 딱 이 정도 생각만 하면서 입으로 효과음을 낸다.


내가 내 상태를 인지할 수 있도록. 그러고 나면 약을 찾는다. 상태를 점검하고 별로 안 놀랐어도 애써 감정을 추스르는 시늉이라도 했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넘기는 순간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그게 못 견딜 정도가 됐는데도 나는 내가 견딜 수 있는 줄 알고 무리하게 강행했던 적이 많았다. 나는 견뎌내지 못했다. 무리하고 있는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을 케어한다는 게 뭔지도 몰랐다. 무조건 시키고 외면하고 닦달하고 윽박지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도 내가 괜찮을 줄 알았다. 나부터가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도 나한테 그랬던 걸까.



설령 그게 아니라도 아무 관계없어도 나는 처우개선을 하기로 한지 오래됐다. 좀 멋이 없어 보여도 조금 겁쟁이도 되어보고 벌벌 떨어보고 솔직하게 무서워하고 솔직하게 겁내하고 조그만 상처에도 아프다고 말하는 연습을 했다. 기계적으로 바로 약을 먹고 치료하는 시늉을 냈다. 조금 뭐랄까, 대우받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픈 건 가까운 사람 아무도 모른다. 나만이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외면하지 않도록 작은 것부터 잘 있는지 들여다보고 그냥 넘기지 않도록 하자.


오랜만에 방에 틀어박혀 펑펑 울었다. 그럴 일이 있었다. 기왕 우는 거 속에 있는 거 다 나올 때까지 울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불안해도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싫어서 잠시 내려놓던 감정들을 가져왔다. 그래, 마침 울고 있으니까 이럴 때 울어야지. 괴롭고 힘들었던 거 다 싸잡아서 울었다.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질 때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이전에는 그러고 나면 묘하게 머리가 맑아지고 속이 편했는데 지금은 춥고 무기력해서 몸을 조금 더 이불 안에 깊숙이 파묻고 이불을 하염없이 보다가 눈을 감다가 떴다가만 반복했다. 괜찮아질 때까지 눈만 껌뻑껌뻑 떴다가 감았다 했다. 지금은 속이 뒤집어지는 거 같은데 그래도 머리는 맑았다, 글도 쓸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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