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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랴 Dec 31. 2023

힘든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생각이 나올 때마다 다시는 이런 좋은 생각이 나오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나의 두려움은 행동에 망설임을 낳았고 만들어낸 것을 올리는데 멈칫하게 만들었다.




어떤 이야기는 너무 잘 쓰고 싶은 나머지 써 내려가다 보니 뭔가 떠오르긴 떠오르는데 덧붙이면 조금 더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은데 그거까지 하기에 너무 머리가 아파서 글을 놓고 잠시 멈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가 아파서 글을 멈추고 싶을 정도면 욕심이 관여했다고 보고 원래의 부담 없이 적을 수 있던 적정선에서 글을 마무리 지었다.




알기는 알겠는데 뭐라 정의하기는 힘든 정리되지 않는 지식은 아직 내가 그 지식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갈무리가 될 때까지 내 색으로 소화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 이상은 욕심이었다.






무리해서 끌어쓸 수는 있겠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지금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기에 나를 갈아서 완성시키는 것과 다름없었다.




너무 애쓰고 무리해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은 원래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인 게 맞다. 소설의 조연이 주인공에게 말해주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미래를 안다는 이유로 자신이 위험해질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외면하는 게 맞는 선택인가 고민했다. 주인공은 몸도 약하고 그 선택을 하면 다른 이들은 살릴 수는 있을지 몰라도 본인이 죽거나 다치는 선택이었다.




내가 그 주인공이라면 내가 높은 확률로 죽거나 다치는 게 확정인데 운명을 조금 틀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하기 위해 자신을 갈아버려야 할까. 그게 옳은 거였을까?






어떤 의미에선 숭고하고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나는 그 주인공 옆에서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알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건 다른 거라고. 그건 애초에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그렇게 해서 일이 망가져도 결국 구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안돼도 그건 사람의 탓이 아니었다.


이럴 거였으면 미래를, 더 강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한테 알려줬어야지. 자기 몸 하나 간수도 겨우 할 수 있는 사람한테 알려줄 게 아니라.


내가 다치고 죽어가면서까지, 갈려가면서까지 해야 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줄 거야.




그럼에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건 그래도 응원해 주고 싶다. 힘든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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