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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랴 May 08. 2024

도태되는 게 그렇게 나쁜가

많은 것들이 과잉되어 있으니까 열에 받쳐서 모든 것들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도 않고 과부하되어 있다.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더 나은 자신이 되겠다는 마음이 욕심이 되어 나와 타인을 괴롭게 만들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이유와 힘과 기운이 다 빠져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안된 이유를 단지 게으르다거나 결과를 내지 못한 노력은 쓸모없으니까 너는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착한 건 쓸모없어, 지금보다는 약간 어렸을 때 수첩에 적어둔 글을 발견했다. 내가 다른 이에게 최대한 착하게 대하고 상냥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게 유일한 장점이라고 생각하던 시기에 적어놓은 말이었다. 나는 이런 거밖에 장점이 없다고. 마음이 가라앉아서 사람 같은 건 믿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하면서 적었다. 사람 같은 걸 믿으니까 이렇게 되는 거라고 그러니까 남 탓할 거 없이 그냥 내가 멍청한 거라고 여겼다.




지금에 와서 그 단순한 한 문장을 읽으면 마음이 울컥하는 게 있었다. 왜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해야만 했을까. 정말 여유가 단 일도 없었구나. 지금도 상황으로 보면 그때보다 더 좋은 상황에 직면해 있지는 않지만 지금조차 짓눌러지는 감각이 여전하다 해도 그때는 정말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는 걸 느꼈다.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았을 마음에 질문을 남긴다. 도태되는 게 그렇게 나쁜가. 못하면 못하는 대로 즐겁게 살면 안 되는 걸까.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면 그냥 할 수 없는 거고 나름대로 신경 쓰지 말고 살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뭘 모르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그보다 더한 수만큼 물어봐도 되고 안 물어보고 싶으면 안 물어봐도 된다. 알고 싶지 않은 건 몰라도 된다. 누가 멍청이냐고 하면 그냥 멍청이라고 해버리고 말아버리면 돼.




그러다 보면 손해 보고 깨져가면서 알게 될 때도 많게 되겠지만 그걸 보고 그것 보라고 내 말 안 들어서 그렇게 됐다든가 네가 틀렸고 내가 맞았다든가 그런 말 좀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살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앞으로도 있겠지만 그냥 내가 안 들으면 그만이야. 굳이 네 안에서 그런 사람들의 말에 힘을 실어주지 마. 기억해, 네가 틀릴 때가 많듯이 그 사람들도 틀릴 때가 많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정말 위험한 상황의 대처법이나 내 삶의 지장이 가는 것들은 안전을 위해서라도 알아둬야겠지만 그 외의 부수적인 것들은 다 때가 되면 그에 맞춰서 알아가고 알게 될 테다. 때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답에 가까운 말을 들어도 그 말이 귀에 좀처럼 들리지도 않고 나한테 와닿아서 꽂히지도 않으니까. 그건 부모님도 못하고 자기 자신도 하기 힘들었다. 아무튼 좀 못한다고 못난 인생인 것도 아니고 잘났다고 훨씬 우월한 인생인 것도 아니야. 그냥 다 자기 갈 길 가는 거니까 다른 사람 신경 쓸 시간에 나부터 행복하고 마음이 비뚤어지지 않게 살고 싶다. 주어진 건 뭐가 됐든 감사하는 게 나았어. 나한테 주어진 게 지금의 나를 살아있게 만들었다는 걸 기억했으면 했다. 반대로 말하면 나를 죽지 않게 만들었던 것들이 나를 살아있게 만들었고 그건 나한테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들이라는 사실들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사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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