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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feeling

바뀌는 게 없다면 뭘 하겠나?

by 릴랴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글자보다 이렇게 안 하면 망한다는 말이 바로 확 꽂히는 느낌으로 와닿는데, 소문을 기다리며 그렇다 하더라 오오! 하는 노인이나 가십을 기다리는 귀족 영애라도 된 것마냥 몹시도 궁금해서 끌리기 마련이다.


망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미 망했다고 무의식적으로 한 번씩은 다 생각하니까



뿐만 아니라 깊이 내재된 호기심이 저 판도라의 상자로 열어보라고 자꾸만 부추기는 것만 같다. 이제는 판도라가 이해가 된다. 신이 이유를 알려주지는 않았지. 하지만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했을 땐 직감적으로 알았을 거야. 저걸 여는 순간 망한다는걸. 분명히 선물을 잔뜩 안겨주고 축복과 아름다움을 안겨주며 선물이라는 형태로 절대로 열지 말라고 고급스러운 상자를 품에 안았을 때는 이성적으로 추정할 때 분명 선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열어보지 말라고 했을까. 점점 궁금증이 커지고 결국에는 열어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됐겠지. 아주 살짝만 열어보자. 좋은 거겠지. 살짝만 열었다가 이상하면 바로 닫아버리면 돼. 그럼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푸른 수염의 아내도 그렇지… 그 저택의 모든 걸 누리게 해주지만 단 하나 비밀의 문 하나만큼은 열어보지 말라고 했고. 지금까지 전 아내들을 포함해서 마지막 아내인 그녀까지 그걸 지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조차 인간은 호기심을 충족하려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절대로 하면 안 되고 위험하다는 신호를 받아도 그 뿌리 깊이 박힌 저건 왜 안될까? 머리에 꽉 차게 돼서 들리지도 않는다. 물론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까지는 몰라도 확실하게 망할 거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 텐데… 애써 무시하고 별거 아닐 거야 하고 하게 되는 게 있다.



그게 깊숙이 깔려있는 자극을 푹 찌른 후 마구 흔들어서 자꾸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니까.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척추를 따라 내려가는 소름 돋는 감각과 오싹한 자극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해도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조금만 하고 덮어두면 티도 안 날 거라는 얄팍한 합리화를 씌우고 리스크 따위를 생각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 명도 빠짐없이 들킨다. 언제부터라고 생각하냐면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순간부터 들키지 않았을까. 해서는 안 되는 일에는 대가가 세고 필연적으로 들킨다가 따라붙는 거 같다.



거기다 잘못 선택하는 게 무섭다. 낙인찍히다시피 해서 다시는 내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봐. 자신도 실수를 계속 해오고 지금도 완벽한 인간이 되지 못했을 거면서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고 낙인찍어 기회를 안 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자는 확실히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다. 스스로가 어떤지 그 태도가 어떤 식으로 비칠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일 테니까. 사람이 몇 번 실수를 했으니까 저 사람은 안된다고 말하고 내 마음에 딱 차게 다방면으로 완벽하지 않으니까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완벽한 사람일 리가 없으니까. 그 말에는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굳이 대응하거나 싸울 필요도 없고 신경을 써주지 말아. 화를 내고 설명해 주는 것조차 어찌 보면 신경 써주는 행동이었다.




누구든 간에 그 사람이 내 말에 변할 거라는 기대는 갖지 않는 게 좋다. 사람이 변하는 건 그 사람이 그걸 스스로 필요해하고 그러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이 바뀌고 그 과정도 사실 순탄치 않다. 자기 살이 깎이면서 바뀌는데 보통은 그걸 가지고 있을 때 나에게 이득이 더 이상 없고 바뀌면서 참고 깎이는 고통보다 내가 본성대로 편하게 살 때 느끼는 고통이 괴로워서 계속 고찰하고 지속적으로 발버둥을 친 결과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다른 누구가 해줄 수 없고 본인이 그토록 원해서 잘 안돼도 시간을 계속 쏟아붓고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을 다 본인이 견뎌내야 바뀔까 말까 한 사안이다. 정말 그건 다른 누구가 해줄 수가 없다. 자신에게 그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부모조차 아니다. 오로지 본인 자신밖에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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