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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망쳐봐야 내가 원하는 완성을 할 수 있어

by 릴랴

그냥 했을 때는 잘 되던 게 어느 순간 안되기 시작했다면 그건 ‘그냥’이 빠졌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 그냥의 자리에 ‘열심히 잘’을 꾸직꾸직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취미로 즐겁게 마구 즐길 때는 결과도 잘 나오고 실력도 쑥쑥 잘 늘었는데 어느 순간 안되기 시작했다면 전문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하려고 노력하고 애쓰고 전문가가 되려고 하는 순간 재미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만드는 사람도 그걸 보는 사람도 재미가 없고 어려운 말을 늘어놓고 어디에나 통용이 될 법한 안전하고 뻔한 이야기만 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예전처럼 도구를 마구잡이로 집어 들고 색칠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고가 쓰레기인 이유가 뭘까? 아니지 초고가 왜 쓰레기가 되어야만 하는지 아는가? 마구잡이로 칠하고 갖고 놀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색 저 색 칠하고 마음 가는 대로 행위에 즐겨봐야 다시 그릴 때 내가 뭘 표현하고 싶었는지 훨씬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뭘 하고 싶고 뭘 하기 싫었는지 하다 보면 보인다. 그게 천천히 보이고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마음대로 갖고 놀아보지 못해서다. 도구를 갖고 놀 줄 알고 마음껏 해봐야 감이 는다. 이때는 이거다. 저때는 저거다. 하는 게 사람마다 다 다를 텐데 나한테 맞게 감으로 집어도 맞게 집어낼 수 있으려면 그만큼 확신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건 막 해보고 마음껏 망쳐봐야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자신의 말이 엉켜있어도 괜찮으니까 이제는 초고가 쓰레기라고 절망할 필요는 없는 거야... 다음은 무조건 이거보다 잘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 보다 더 잘할 수 없을 거라고 절망스러울 때는? 그때는 기대 이상으로 터진 내 운과 성과에 감격하면 돼. 그게 평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는 건 아직 내가 거기까지 도달 못 했는데도 거저 주어진 잭팟 같은 거지. 예기치 못한 보너스를 보상이랍시고 세상이 얹어준 걸 이미 아니까 로또 맞은 기분으로 선물을 만끽하면 되겠지. 그리고 단정하기는 아직 일러. 눈을 마지막으로 감는 순간까지 언제 이거보다 더 잘하게 될지 혹은 운이 좋아 포텐을 맞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이 정말 더는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마지막까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계속 탐구했던 기억은 저승 가는 길에도 곱씹어볼 만한 좋은 추억으로 남겠지. 마지막까지 안 이뤄져도 이루느냐 마느냐가 중요하기보다 이루기 위해 계속해왔던 거, 멈춰 설 수밖에 없을 때 놓아줘도 미련 없을 만큼 그 과정자체가 소중했다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했다는 거야. 힘들게 해야 하고 잘하려고 아득바득 애써야만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건 편협한 생각일지도 몰라. 즐거운 마음으로 남들은 몰라도 본인한테는 재밌어서 아무리 많이 해도 하나도 안 힘들었어도 그것도 노력인 거잖아. 다른 사람은 물어보겠지. 그렇게 힘든데 그거 어떻게 하냐고. 나라면 그렇게까지 못하고 다른 거 했을 거라고. 하지만 본인은 게임하듯이 했을 뿐이라 몇 시간이나 해도 밤을 새도 하나도 안 힘들고 정신만 맑은 거야. 그런 게 정말 없다고 생각하니? 이런 건 노력이 전혀 아닐까? 생각을 계속 달리 해보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다시 해보는 것과 노력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할 때다. 꺼려지고 하기 싫어지는 건 힘들다고 생각하고 힘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어른이 되기 싫은 이유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빨리 어른이 돼서 책임을 지라고 하니까. 어릴 때는 왜 되고 싶었지? 그때 먹던 간식을 마음껏 사 먹고 싶어서 어릴 때 못하던 걸 멋지게 하고 싶었던 거지. 그렇지만 우리가 이미지 씌우는 건 완벽되고 완성되고 책임지는 인간이 되라고만 한다. 어른이 정말 항상 어떤 면에서도 완성되고 완벽한가? 우리가 만나왔던 어떤 어른도 허점이 없었던가? 주변사람들, 선생님, 부모님.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가끔은 실수나 철없는 일이나 실수와 실패와 잘못하는 일도 무수히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른이 이런 것도 못하냐? 어른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옥죄고 억누르려고 한다. 완벽해지라고 계속 독촉하는 것이다. 노력을 했는데 성과가 없는 네가 이상하다. 나는 그렇게 하니까 잘됬는데 네가 방법을 잘못했겠지. 네가 열심히는 했겠지. 그런데 열심히 해도 결과가 나쁘니까 너는 열심히 한 게 아니다. 본인도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잊어버리고 환상 속의 이상향의 어른과 노력의 프레임을 덫씌운다. 그런 건 되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까 내가 되고 싶고 노력을 하고 싶은 이유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게 좋겠지. 다른 사람말은 버려버리고 필요하면 지금 내가 하는 말도 버려버리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의 세상에선 자기 자신의 말과 바람만이 중요하다. 자신의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면 내 세상이 사라지니까. 중요한 건 본인 안에 내재되어 있는 말들이다. 내 안에 들어있는 말을 꺼내서 내 식대로 만들기를 바란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말의 향연이고 장황하고 허황된 말들이어도 계속하면 점점 말이 된다. 내 진짜 바람이 드러난다. 그걸 본인이 뭔지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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