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다. 살아오면서 격려와 좋은 말들을 들을 기회가 많았으니까. 지금의 내가 있었던 것과 무거운 짐들을 조금이라도 털어내고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건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들이 매번 달랐지만 분명하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괴로운 경험으로 안으로 곪아가고 있었을 무렵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했을 때였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 경험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알고 있다. 그 말들을 내게 해줬던 사람들은 너무 쉽고 가볍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해줬었지만 그게 막다른 길에 몰린 것같이 막막하고 괴로웠을 때 끊임없이 만들어지던 비관적인 생각들을 너무도 다르게 바꿔줬었다. 너무나 쉽게 마음을 털어낼 수 있게 가볍게 해 주었다. 그랬기 때문에 숨이 턱 막혀왔는데 숨이 쉬어졌었다. 순식간에 너무나 가벼워졌었다. 그들은 자신이 내게 그런 도움을 주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보통은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면서 정말 죽을 것 같고 끝일 것 같은 순간에 만나게 되는 한 명 내지 두 명의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가끔씩 나타났었다. 그들이 물질적인 도움이나 어떠한 대단한 것을 베풀었던 건 아니었다. 내가 가진 고민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 적도 많았으나 그들이 했던 말들로 인해 아주 오랜 시간 괴로워했던 부분들이 그 말들과 경험을 풀어서 전해준 것으로 그 잠시의 시간 동안에 실이 풀리듯이 풀려나갔다. 왜 괴로워했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말할 때 나는 계속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몇 마디의 말로 나는 구해진 적이 많았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에는 죽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몇 마디에 어떤 사람은 잘못될 수도 있지 않겠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줄 수 있다면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될 수 있으면 그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고 그건 꼭 내 눈앞에 보이는 진실과 섞기로 마음먹었다. 완전한 거짓말이 되지 않게. 그것도 아니면 단점처럼 보이는 것들을 장점으로 좋게 전환해서 보면서 말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왜냐면 세상에는 지적받고 평가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는데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하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말을 항상 여러 가지 말로 변환해서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잠시 들었던 격려와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고뇌와 문제들이 아무렇지 않게 단순하고 가볍게 만들어주었던 말들이 내게 미쳤던 영향을 지금도 계속 받고 있었다. 그것들이 지금도 날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이 있고 죽이는 말이 있다면 당연하게도 살리는 말을 해야 되지 않겠나, 잠시 머물다가 스쳐 지나가기도 했고 내 인생에 중요한 이야기를 써줬던 누군가가 내게 그랬듯이.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쪽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