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리멀리 Dec 17. 2018

20- 부수적인 모두가

 부수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새는 그런다. 


 우리 둘이 밥을 해 먹을 땐 곰이 요리를 하고 내가 설거지를 한다. 그건 남들에게 때로 이색적이고 우스운 일이 되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는 여성이 주장을 강하게 하면 남성이 싫어져서 떠나니, 주장을 약하게 하라는 말을 들었다. 악수를 나눌 땐 종종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다가도 곰을 발견하면 그리로 가 악수한 뒤 내게 시선이 온다. 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일들이다. 곰과 그의 아내로 설명되어 이름이 불려지지 않은 것도 여러 번이다. 그저께는 딸린 식구로 살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혼자 오래 울었다.


 늘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우리의 가사 분담으로 누군가가 재밌지 않았으면, 각자의 주장이 존중받고 가까운 사람부터 인사를 주고받았으면. 


 어떤 색 피부를 가졌는지와 어떤 성별을 가졌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일을 여러 번 겪으니 내가 아는 부수적인 존재들이 아프게 떠올랐다.


 지난 팔월엔 인도의 콜카타에 있었다. 테레사 수녀의 마더하우스에 다니느라 매일 고가도로 밑을 지났다. 거긴 사람이 많이 살았다. 도로 아래 작은 틈에 양념들을 두어 찬장처럼 쓰고 기둥 밑 시멘트 블록은 침대로 쓰던 사람들이 있었다. 구월, 거긴 붕괴 사고로 무너졌다.


 며칠 전까지 아르메니아에 있었다. 생소한 나라였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을 만났다. 아르메니아에 삼 년 정도 살았다고 했다. 그는 세금을 내러 은행에 가야 한다고 잠시 차에서 내렸고 곰과 나는 차 안에 있었다. 길 건너편에서 무언가 부딪혔다. 어떤 차가 개를 치고 지나간 거였다. 개는 죽지 않고 다쳤다. 바닥에서 구르고 크게 울었다.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말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무서워서 계속 보고 있지도 못했다. 미안함도 주제넘었다. 걱정도 궁금함도 그랬다. 고통을 듣는다면 그 울음일 것 같았다. 그 나라에 있는 동안 찻길에서 죽은 개들을 많이 보았다.


 떠오르는 존재들이 무겁다. 내가 중심에 있지 않을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억울함을 넘은 아픔과 죄스러움이 너무 많다.


 부수적인 모두가 깊숙이 구성하는 존재가 되길.

발이 놓인 곳에서 이름을 갖고 이름이 불리길.

모두 무사하길.


-18.12.16. 조지아, 트빌리시



매거진의 이전글 19- 화가 나다가 문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