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리멀리 Nov 17. 2018

4- 그러고 나서

 오늘까지도 서로 말 없다.


 어젯밤에 싸워서 그렇다. 이게 바로 ‘작은 일로 싸운다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무서움을 이해받지 못했다는 게 지금까지의 모든 다행을 무너뜨렸다.


 과자 부스러기처럼 내 마음을 조금 부숴서 네 앞에 떨어뜨리면 네가 그걸 주워 날 이해했으면 했다. 그러면 나는 덜 초라하게 겁 많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수지 말고 그냥 처음부터 찬장 열고 꺼내 줄 걸 그랬나 했다. 그건 무척 수고롭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겁 많은 날 초라하게 생각하지 말아 볼까. 겁 없는 네 앞에서 겁 많은 내가 용기로 멋질 수 있을까.  

용기를 발휘할 기회 없이 용기 있고 싶다. 그리고 너하고 화해하고 싶다.


 너하고 나는 이제 두 달을 살았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곁에 있는데 또박또박 내 상태와 기분에 관해 설명하는 건 필요하지만 불필요하고 귀찮다. 그래서 싸워버리면, 그래도 둘 뿐이다. 우리가 우리 둘 이어서 무궁무진했는데 싸운 뒤만큼은 둘이 그렇게 작을 수가 없다. 너는 온 세상인데 싸운 뒤만큼은 내 세상 네 세상이 따로 따로다.


 너는 그리고 나는 쓰느라 또 말 없다. 사랑하지만 미워하느라 반나절이나 지나갔다.


-18.7.14 세 번째 길/인도, 오로빌(Auroville)

매거진의 이전글 3- 싸운 밤에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