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인정해 주세요, 나를 사랑해 주세요]
인정받지 못한, 사랑받지 못한 나는 그것들을 해 달라고 소리치다가 갈매기를 죽인다. 죽은 갈매기가 된다. 이 희곡은 몹시 일상적이고 우습고 처절하다. 등장하는 이들은 제각각 중요히 여기는 일과 사랑하는 이와 열망하는 것을 안고 동동대면서 산다. 메드베덴코는 마샤를, 마샤는 트레플료프를, 트레플료프는 니나를, 니나는 트리고린을, 트리고린은 그냥 끌리는 사람을 열망하면서 괴롭고 황홀한 일상을 보낸다.
트레플료프는 이미 유명한 작가 트리고린과 배우이자 엄마인 아르카지나에게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인정받고자 열심히 노력한다. 또한 여태 고수되어 온 구습에 반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애쓴다. 기성세대인 아르카지나와 트리고린은 그러한 시도에 꼼짝 않을뿐더러 그의 작품에 큰 관심도 없다. 그는 몸부림치다가 갈매기를 죽인다. 그가 사랑한 니나는 무려 트리고린에게 반해서, 그리고 배우를 꿈꾸며 떠나버린다. 아르카지나와 트리고린, 니나가 떠난 이 년 동안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이 떠난 동안 죽은 갈매기는 박제되어 그 집 찬장 안에 남겨졌다. 박제를 요구한 트리고린은 갈매기를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인정받지 못한 갈매기는 죽었는데도 그 집을 떠나지 못했다.
이 년 동안 트레플료프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니나가 버림받고 극장을 전전하면서 불행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기뻤을까, 슬펐을까.
이 년이 지나고 그들이 돌아왔다. 트리고린은 사람들의 인정과 동경을 먹고 아무에게나 상처 주는 인간이 되었다. 니나와 트레플료프는 다시 만났다. 트레플료프는 니나가 없는 자기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구구절절 말하다가 끝내 니나에게 곁에 있게 해 달라고 빈다. 하지만 니나는 기어코 떠나겠다고, 나는 갈매기라고, 아니 배우라고, 나는 나의 길을 찾았다고, 그리고 나는 겨우겨우 서 있다고, 나는 트리고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를 또 떠난다. 남겨진 트레플료프는 자살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사랑에 버림받아서, 몸부림치다가 갈매기를 죽였고 그러고도 죽지 못한 자기를 죽인다.
나는 일상적으로 사랑과 인정을 원한다.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황홀해하다가,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괴로워진다. 인정을 욕구하고 기대함으로써 황홀해하다가 그로 인해 좌절한다. 니나가 그랬듯, 등장인물들이 그랬듯, 내가 그렇듯,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듯. 나와 이들은 겨우겨우 서서, 갖고 싶은 것을 열망하면서 삶을 잇고 동기를 부여하고 의미를 찾는다. 이 모든 과정이 눈부시지는 않다. 인간은 어쩔 때 무척 숭고하고 고귀하지만, 많은 순간 그렇지 않다. 이 희곡은 그 안 눈부신 과정에 주목한다. 초라하게 인정과 사랑을 원하는 보통 사람들의 멋지지 않은 일상과 문장, 낱말들을 조명해 부끄러운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는 다 그렇다고, 자살을 하듯 갈매기를 죽이곤 한다고 말해준다. 죽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용기 내어 죽어 주기도 한다. 나의 숭고하지 않음을 위로한다. 그 위로를 읽고 나는 위로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