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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커피챗 -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요

전쟁통에도 사랑은 피어난다지만

by 수풀림

"대박, 이 과장 눈빛 봤어? 이제 아주 대놓고 티내네."

"그게 숨긴다고 숨겨지겠어? 자기들끼리만 모르는 척 하는거지 뭐."

회사에서 가장 재미난 구경 중 하나는, 바로 사내 연애 1열 직관입니다. 전쟁통에도 사랑이 꽃핀다잖아요. 회사라는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젊은 남녀가 함께 일을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랑의 역사가 쓰여지겠어요. 같이 가는 외근길에 서로의 관심사를 얘기하다 친해지기도 하고, 불 꺼진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며 서로를 위로하다 눈이 맞기도 하죠. 회식 자리는 또 어떻고요. 술기운을 빌려 플러팅을 하고, 취한척하며 슬쩍 호감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회사에서는 수많은 로맨스가 탄생하지만, 직장인들은 이 사실을 끝까지 숨기려 노력해요. 이는 마치 007 작전을 방불케하죠. 데이트 장소를 일부러 회사에서 먼 곳으로 잡는다거나, 회사에서는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는다거나, 회사 업무 용어로 만든 암호로 사내 메신저에서 소통하기도 해요. 주위 사람에게 걸려도, 시치미부터 뚝 떼고요.


도대체 왜, 사랑이 죄도 아닌데 사내 연애는 이렇게 꽁꽁 숨기는걸까요?

이는 바로, 사내 연애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 때문이죠. 우리는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모두 회사 내에서 특정 역할을 부여받는데, 연애를 하게 되면 그 역할 자체가 흔들릴 수 있어요.

실제로 제가 겪은 케이스를 예시로 소개해볼게요. 전 직장,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에요. 한 명은 본부장, 한 명은 입사 1년차 신입사원이었어요. 동료들이 언젠가부터 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본부장님이랑 OO님이랑 출장 날짜 같던데? 2박 3일 출장을 이렇게 몰래 같이 간다고?"

한 번 시작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죠. 본부장님이 업무 시간에도 조금씩 티를 냈거든요. 물론, 본인은 발뺌했지만요. 회의 시간 돌아가며 의견을 낼 때, 신입사원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된다거나, 아직 일의 기초도 없던 그의 고과가 더 높게 나오는 식이었어요.

원래 남의 연애사는 건드리지 않지만, 같은 부서 팀원인 나에게까지 그 피해가 오는 것 같아 억울하더군요. 본부장님은 더 이상 본부장님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사랑이 죄가 아니라, 콩깍지에 씌여 본분을 잃은 것이 잘못된 행동이었죠. 팀원 편애란 얼마나 불공정하고 민감한 소재인가요.


그것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은, 그들이 헤어졌을 때 발생하곤 해요.

회사에서도 반짝이는 눈빛을 은밀하게 교환하던 남녀가, 사랑이 끝나면 급격히 냉랭해집니다.

"저 김과장님과 프로젝트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다른 멤버로 바꿔 주시면 안될까요?"

연애만 파투낼 것이지, 같이 하던 프로젝트마저 쫑낼 판이에요. 우리는 AI가 아니기에, 머리로는 역할에 충실해야된다 이해하지만, 감정으로는 쉬이 받아들이지 못해요.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내릴 것 같지만, 슬픔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그 인간이랑 헤어지더라도 프로페셔널하게 내 일을 해낼 줄 알았는데, 실상은 잘 안되는 거죠.

아니, 사실 이별까지 가지 않아도, 그들이 대판 싸우기만 해도, 회사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회의 자리에서 서로의 의견에 억지 반대를 하지 않나, 말 한마디도 섞지 않아 불편하기 짝이 없어요. 주변에서는 그들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같이 협업하는 일의 속도도 느려지죠. 그렇다고 제3자가 그들의 연애사에 개입할 수는 없잖아요? '제발 싸우지 말아라, 제발 잘 지내라'하고 응원하는 수 밖에요.


사랑과 연애는 분명 한 사람의 자유에요.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와 만날지는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개인의 영역이죠. 하지만 회사라는 특수한 집단에서는, 선을 꼭 지켜야만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에 눈이 멀어 애인인 박대리에게 높은 고과를 주어서도 안되고, 편파적으로 그의 의견에 매번 손을 들어줘서도 안되죠. 둘만의 감정 싸움을, 회의실까지 가져와 분위기를 망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냥 둘이 사귀는 거면 괜찮은데, 그걸 넘어 업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건 선 넘는 행동이에요. 동료들이 불편해하는 지점이 바로 이런거니까요. 믿기진 않으시겠지만, 전 직장에서는 사내 연애와 사내 결혼 모두 금지였어요. 이런 불편함의 싹을, 애초부터 회사에서 자른거죠. 만약 결혼을 한다면, 둘 중 한 명은 무조건 퇴사해야 했어요. 놀랍죠?

사실 이런 커플들이 회사 밖에서 손을 잡고 다니던, 주말에 따로 만나서 데이트를 하건, 내 업무와 엮이지만 않으면 크게 상관 없어요. 오히려 무료한 회사 생활에서, 재미난 가십거리가 되죠. 몰래 사내 연애를 하다가 결혼에 골인한 커플에게, 진심어린 축하의 박수를 건네기도 하고요. 아, 물론 조직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자기 일도 프로페셔널하게 잘 해낸 커플에 한정이긴 해요.


혹시 지금 회사에 자꾸만 눈이 가는 분이 있나요?

그 분만 봐도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얼굴이 괜시리 붉어지신다고요? 혹은 이미 남들 몰래 연애를 시작해, '어떻게 하면 안 걸리고 이 관계를 오래 유지할까' 작전회의를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사랑도 일도, 그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얼마나 좋아요, 회사 다니면서 돈도 받고, 님도 보고. 끙끙 앓던 월요병이 싹 사라지고,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엄청 가볍겠죠? 매일 회사를 가고 싶은 그 마음, 직장인으로서 정말 부러워요.

다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연애의 달콤함은 마음껏 즐기되, 일의 냉정함은 잃지 않는 게 사내 연애의 유일한 ‘보호 장치’라는 것.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건, 사랑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직장으로서의 나'도 있으니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분들은, 현명한 판단으로 커리어와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으시리라 믿습니다.


#직장인 #사내연애 #회사 #사랑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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