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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Mar 13. 2024

조력자도 주인공이 될 수 있나요?

샴푸 짝꿍 린스 같은 존재

내 무릎을 탁 치게 만든 좋은 글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이 글은 카피라이터이자 작가인 정철님의 학교 밖 선생님 365라는 에세이집에 실린 '내 자리를 가지려면'이라는 시이다.


내 자리를 가지려면


비누가 지배하던 욕실에서

샴푸가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확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흉내 내서는 내 자리를 갖기 어렵다


샴푸가 지배하던 욕실에서 

린스가 한자리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샴푸의 일을 빼앗지 않고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쓰러 뜨려야 내 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 정철, ‘학교 밖 선생님 365’ 중 -




회사가 뒤숭숭하다. 언제나 그렇긴 했지만 이번에는 그 여파가 조금 더 큰 것 같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항상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나만의 경쟁력'이다.

연차도 꽤 됐고 이 조직에서도 오래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잘하는 것을 증명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있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내가 뭘 잘했나를 생각해 보니 별로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결국 생각나는 건 아래와 같은 기억의 부스러기들 몇 가지...

부서 간의, 이해관계자 간의 중간 조율자 역할

타인의 말과 글에 대한 맥락 파악 및 이해

정리가 잘 안 되는 회의의 퍼실리테이터 역할

전체적인 업무 파악, 정리 및 계획

개인의 성향 및 동기 부여 포인트 파악


카리스마 넘치는 커리어우먼의 경쟁력을 생각하다가 내 강점으로 돌아오니 왠지 초라해 보였다.

게다가 내가 잘하는 분야는 회사에서의 주인공 역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주인공 역할이라 함은 리딩하는 파워, 톡톡 튀는 아이디어, 죽여주는 전문성 등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내가 잘하는 정리하기, 조율하기 등은 그야말로 조연의 역할처럼 느껴졌다.

업무평가에도 써놓기 힘든 영역들. 하지만 조직에서 필요하니 누군가는 해줘야 되는 역할들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정철님의 '내 자리를 가지려면'이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다.

범용적으로 쓰이던 비누와 달리, 머리를 감는 스페셜한 용도의 샴푸는 당시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비누와 또 다른 비누로 경쟁한 것이 아닌, segmentation & targeting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샴푸의 시장이 성장하자 이를 통해 같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린스가 출시되었다.

샴푸 대 샴푸의 대결이 아닌, 샴푸의 가장 큰 조력자 린스가 탄생한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원했던 나만의 경쟁력은 결국 샴푸와 린스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샴푸처럼 비누와 직접적으로 경쟁하지 않으면서 세상에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다. 내가 잘하는 것 중 이런 것은 무엇이 있을까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샴푸를 도와 성공했던 린스 같은 역할도 내가 추구하는 사회생활이기도 하다.

회사는 경쟁이 당연한 공간이라고 하지만, 꼭 경쟁하고 남을 깎아내려야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선천적으로 경쟁을 싫어하고, 협력하는 분위기에서 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협력을 하기 위한 조율자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다.


조력자도 과연 회사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 대답을 이 시에서 찾아보았다. 린스가 과연 조력자이기만 할까? 어쩌면 샴푸와 같이 상생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리고 린스로 인해 머리가 반짝반짝 빛이날 수 있듯이, 내 역할도 큰 범주에서는 회사를 반짝이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이라는 결론도 내려본다.


조력자라는 프레임이 아닌, 나만의 강점과 재능으로부터 역할을 재정의 해봐야겠다.

나처럼 자신의 역할로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같이 한번 해보자고 제안드려 본다.


#몹쓸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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