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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Apr 23. 2024

발표의 시작은 청중에 대한 이해로부터

길거리에서 전도당하고 느낀 점

날씨 좋은 어느 주말, 모처럼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겨 집 앞 공원으로 산책을 하러 나갔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신나게 걸어가는데 앞에서 20대로 보이는 여성 셋이 말을 건네온다.

"저 혹시, 조별 과제 때문에 그러는데 3분만 시간내주실 수 있을까요?"


평소 같으면 듣지도 않고 스쳐 지났겠지만 따스한 햇볕이 나를 여유롭게 만든 탓인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아니, 날씨 때문만은 아니고 대학생 같은 친구들이 조별과제를 하는데 일말의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조별 과제 발표자료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서 제출해야 된다며 잠시만 발표를 듣고 평가를 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준비해 온 태블릿에 있는 발표자료를 한 장씩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을 했다.

아뿔싸, 듣다 보니 대학교 조별 과제가 아닌 유월절에 대한 콘텐츠였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가급적 다른 종교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없는 나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유월절 이야기는 사실 듣기 힘들었다. 중간에 말을 끊고 산책을 이어가고 싶은 들끓는 욕구를 일단 잠재우고 끝까지 들었다. 


그들은 마침내 발표가 끝나자 솔직한 평가를 해달라고 태블릿을 내민다.

나는 웃는 표시와 화난 표시의 그 중간쯤의 애매한 표정의 이모티콘으로 평가를 하며, 참아왔던 내 얘기를 했다. 

"앞으로 발표하실 때는, 듣는 사람을 고려해서 진행하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용기가 한편으로 가상하기는 했지만, 청중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열정적으로 자신의 얘기만 전달하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콘텐츠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들은 전도에 성공했으니 이 발표로 하나님의 말씀을 한 명에게라도 더 전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듣는 나는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뭐 그래도 이번의 인내심을 가진 새로운 듣기 시도로 글감이 하나 더 생겼으니 내 입장에서 손해는 아니었다. 평소라면 전도당하기 싫어 자리를 피했겠지만 이번에는 이 상황을 나의 시선으로 다시 재해석할 수 있어 나름 배운 점이 있었다.




발표의 목적은 여러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 위로를 주고 영감을 주기 위해서, 아니면 지금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 등등 말이다.

하지만 발표도 결국 소통이다.

일방적인 발표는 상대방에게 지나가며 흘려듣는 TV 뉴스처럼 들릴 수 있다. 잘못된 소통으로 발표의 목적이 충족되지 않은 채 끝나버릴 수 있다.


발표를 구상하고 진행할 때는 가장 먼저 듣는 사람들을 고려해야 한다.


청중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발표의 내용과 진행방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부서에서 요즘 겪고 있는 에피소드를 예시로 들어 본다.

최근 사장님께서 올해 매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key initiative를 가져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이 경우 발표의 핵심은 최종 청중인 '사장님'을 공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이다.


이번 숙제를 어떻게 진행할지 팀장 미팅에서 논의하다가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일방적으로 팀장들이 모여서 사장님 발표 자료를 만들지 말고, 팀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보자는 것이었다. 팀원들의 아이디어가 더 좋을 수 있고 이 경우 top down 방식이 아닌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너무나 좋은 취지이다. 모든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의견을 내고 수렴하는 과정. 

하지만 사장님의 방향성을 잘 모르는 팀원들이 가져오는 아이디어는 결국 사장님 입맛에 맞지 않아 활용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발표는 최종 청중인 사장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발표 자료를 위한 아이디어 회의를 하려면, 사장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매개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발표는 소통이고, 그 소통의 중심에는 '듣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청중을 고려한 발표를 진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청중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만약 타 부서에서 우리 부서에 대한 소개를 해달라는 요청이 온다면, 타 부서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하면 좋을 것이다.

타 부서가 만약 인사부라면, 인사부는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 부서에 대한 지식이 이 정도라는 것부터 말이다. 파악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고객에게 우리 제품을 소개하는 자리도 마찬가지이다.

최종 청중인 고객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알면 알수록 발표를 통한 설득력과 전달력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만약 여러 가지 제약으로 청중 파악이 안 된 상태로 발표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 때는 발표 도입에 앞서 아이스브레이킹을 가장한 몇 가지의 질문을 하면 도움이 된다.

혹시 'OOO(발표 콘텐츠) 들어보시거나 사용해 보신 분 있을까요? 등의 질문 말이다.


발표를 잘하는 스킬은 굉장히 다양하고 많다.

하지만 청중을 파악하고 그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 그것은 발표에 대한 스킬보다 더 중요한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발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작점일 것이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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