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풀림 May 30. 2024

질문하는 팀장

팀원 스스로 방법을 생각하게 만들어 보자

팀원 A와의 1:1 미팅 시간, 업무 보고를 마치고 바로 고민을 토로한다.

"이번 주까지 발표 자료 완성해야 되는데 같이 자료를 검토해 줄 사람이 필요해요. 시간도 없고 내용이 맞는지 몰라 꼭 검토받고 최종본 만들고 싶어요."


고객사 앞에서 중요한 제안서를 발표해야 되는 자리가 내일 모레이다. A는 발표 자료 구상과 제작을 거의 혼자 도맡아 하고 있는데 자기가 만든 자료에 대해 확신이 부족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업무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새로운 프로젝트라 참고할만한 기존 제안서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객사는 어디서 보고 왔는지 아직 구현되지도 않은 외국의 최첨단 시스템을 요청하고 있었고, 우리뿐 아니라 경쟁사 그 누구도 고객이 원하는 사항에 100% 부합하지 못한다. 하지만 A는 이런 상황에서도 최대한 제안서를 잘 만들어 고객을 설득하고 싶어 한다. 비록 100%는 아니라도 우리 회사의 제안을 믿고 따라오면 원하는 것을 단계적으로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A의 고민과 요청사항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같이 검토해 줄 사람이 없을 텐데... 오죽하면 참고할만한 기존 자료가 없었겠냐고. 이건 우리 회사에서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거든.'

여기에 더해 나라면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 같아 뜨끔해하며 스스로 반성도 하게 된다. 어차피 해도 안 될 것 같은 일들을, 효율이라는 명목으로 쳐내는 것이 팀장이 된 이후 생긴 나쁜 습관 중 하나이다. 솔직히 여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굳이 쏟아야 되나 싶은 마음이 든다. 


A가 요청한 자료에 대한 검토자는 지정해 주기 힘들다고 바로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는 것을 간신히 참아본다. 그리고 답변 대신 질문을 건네었다.

"A님이 생각하는 '같이 자료를 검토해 줄 사람'은 우리 팀에서 누구인 것 같나요?"

질문했을 때는 사실 반반의 마음이었다. 자료를 검토해 줄 사람이 우리 팀에 없는데 도대체 누굴 말하는 건지 나도 궁금한 마음과, 이 요구는 지금 상황에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돌려서 말해주고 싶은 마음.


아마도 나의 '검토자 지정'에 대한 대답을 기대했을 것 같은 A는 내가 질문을 하자 살짝 당황해하며 답한다.

"어... 음.... 생각해 보니 아무도 떠오르지 않는데요? 아, 진짜 없나요? 왜 없죠?"


나는 A의 답을 듣고 다시 질문을 했다.

"A님은 왜 적합한 사람이 생각나지 않을까요?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요?"

A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답을 내놓는다. 이런 제안서 작성이 우리 팀에서 처음이고 아무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자기가 원하는 수준의 검토를 같이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팀원 B, C를 잠시 떠올렸는데 그들은 부분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있겠지만 전체에 대한 방향성을 논의하며며 가기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덧붙인다.


팀원이 고민을 하면 팀장도 같이 힘들다. 그 상황을 예전에 겪어본 사람으로서 격한 공감이 되기도 하고, 빨리 팀원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팀원의 고민을 듣자마자 당장의 해결책이 생각나서 입이 근질거리기도 한다. 혹은 내가 해결해주지 못할 것 같은 일들에 대해서는 너무 미안해진다. 못난 팀장인 것 것 같아서.


팀원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 팀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상황에서 즉각적인 반응이나 대답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겠지만 딱 1분만 참아보자.

대신 팀원의 속마음을 한 번 더 알아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팀원이 나에게 이 고민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면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팀원이 별생각 없이 팀장에게 고민을 말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말을 꺼낸 의도가 분명 있을 것이다.


A 팀원의 경우에는 자료 검토를 같이 해서 고객을 매료시킬만한 더 좋은 자료를 만들고 싶다는 니즈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팀장인 나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이 경우 나조차도 즉석에서 줄 수 있는 해결책이 없어 질문을 해봤다. 어떤 의도인지 파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러 질문 이후 사람 자체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하고 싶어서'라는 근본적인 목적을 알게 되니, 나에게 그리고 A에게 다른 해결책이 보였다.


다시 A에게 질문을 했다.

적합한 사람이 없어 보이는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냐고. 

A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럼 팀장님이 자료의 중간 검토나 최종 검토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동안 바빠 보여서 차마 요청하지 못했는데 자기가 생각했을 때 내가 적합한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기꺼이 팀원의 요구를 수락했고, A는 바로 추가 미팅을 잡아 내 시간을 확보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문제에 대한 해결의 '씨앗'이 자리 잡고 있다.

다만 그 씨앗을 발견하고 물을 주어 싹을 틔우는 사람과, 씨앗의 존재 자체를 까먹고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서 씨앗을 자라게 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씨앗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정성을 쏟아야 되는데 바쁜 사회에서는 그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내 안에 그 씨앗이 있다는 것 자체를 발견하게 되는 첫 발걸음이다. 질문은 성장 자극이다. 물과 햇빛과 거름이다.

씨앗은 내가 가지고 있는데 누가 성장 자극을 주면 잘 클 수 있듯이, 질문을 받으면 내 안의 해결책이라는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다.


팀장이 팀원에게 즉각적인 해결책을 주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잡은 물고기를 계속 갖다 바치는 격이다. 팀원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는 우선 질문을 해보자. 그들의 해결책과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보자.

아참, 부작용도 있다. 질문에 대해 오해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질문만 하면 팀원들이 짜증 나서 다시는 팀장들과 얘기하지 않을 수 있으니 나의 질문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시길.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매거진의 이전글 궁금함을 마음에 품고 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