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ing
이번 주는 컨퍼런스로 시작해, 컨퍼런스로 끝나는 한 주이다.
내가 속해 있는 산업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행사로, 우리 회사는 스폰서로 참여해 부스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수요일은 컨퍼런스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에 초청을 받아, 새로 부임한 리더분과 함께 참석했다. 개막식이 의례 그렇듯 중요 인물들이 이런저런 인사말들을 건네고 마지막에는 사진을 찍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진행이 되었다. 특별 세션으로 "Inspiration" 강의가 포함된 것이다. 개막식 내내 계속 딴짓을 하다가 갑자기 유창한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목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쳐다보기 시작했다.
무대에는 젊은 남성분이 서있었다.
영어 소개에 이어 한국어로 다시 자신과, 자신이 만든 회사를 간단히 소개한다. 그가 말을 시작함과 동시에, 지루하기 짝이 없던 개막식에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그는 닷패드라는 시각장애인용 촉각 디스플레이 패드를 만든 창업자이다. 그가 소개하는 시각장애인의 세계와 한계, 그리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기술적인 시도가 신선했다. 시각장애인은 점자를 이용해 학습을 하거나 컨텐츠를 접한다고 한다. 볼 수는 없지만 글자를 만지며 세상과 소통하는데, 여기에는 어쩔 수 없는 벽이 있다. 바로, 글자로 이루어지지 않은 세상은 쉽게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모티콘이나, 나비의 모양, 그래프와 같은 그림들은 점자로 느낄 수 없다.
닷패드의 창업자는 주위의 시각장애인 친구들에게 우연히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듣고, 세상을 향한 질문을 시작했다. 왜, 시각장애인들에게 그림으로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아직 없는 걸까? 내가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걸로 과연 소통이 이루어질까?
어찌보면 사소하고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한 그의 질문은, 세상에 없던 혁신을 만들어냈다.
그림으로 만들어진 컨텐츠가, 점자처럼 촉각으로 변환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패드에 나타난다. 오돌도돌 '닷'으로 이루어진, 누구나 쓸 수 있도록 적절한 가격에 책정된 발명품으로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새로운 세상과 연결되었다고 한다. 구름의 모양을 처음으로 느꼈고, 스마트폰이 있어도 소리로밖에 느끼지 못했던 콘텐츠들을 직접 만지며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자신들의 기술은 별로 대단하지도 않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다만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그동안의 관습에 대해, 왜 그럴까, 다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까 생각했던 것이 남들과 다른 점이었다고 한다.
그의 짧지만 강렬했던 강의는 'Inspiration'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예전에 코칭을 받을 때, 코치분이 내 일에서의 'mission'을 찾아보라고 숙제를 주신 적이 있다. 우리 회사의 미션은 회사 소개를 하며 달달 외울 정도로 머릿속에 박혔는데, 막상 내 일에서의 미션은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냥 회사원이니까, 돈 벌려고, 일을 해야 되니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만 들었다. 직업적 소명은 대단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흔히 비유하는 벽돌공의 이야기가 떠올랐지만, 나는 그런 거창한 생각은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일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프다고 여겼다.
강연을 들으며 그의 미션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자신의 시각장애인 친구들과 주변인들을 돕고 싶어 시작한 일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물결이 된 순간 그는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아마도 무척이나 뿌듯하고 보람되리라 짐작해 본다.
나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세바시에 나가서 강연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영 컨텐츠가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뭘로 세상을 바꾼다고 그런 헛된 꿈을 꾸지?
그러나 그의 강연에 따르자면,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는 거창하고 원대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서서히 세상에 기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주변에 작은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그의 강의를 내 언어로 다시 바꾸어 해석해 본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바로 작은 질문으로부터라고 말이다.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상에 질문을 던져보고, 불편함에 의문을 가져보면 어떨까. 글을 쓰는 것도 이에 도움이 된다. 당연함을 당연함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것, 그 자체가 글감의 시작이니 말이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