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등만 터지지 뭐
팀원 A의 표정이 아침부터 심상치 않다.
출근할 때부터 밝은 미소로 인사하며 항상 먼저 말을 건네는 캐릭터인데, 오늘은 얼굴에 그늘이 보인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한 채 자리에 앉아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다. 팀장의 직감으로 이건 심각한 건이라는 걸 예상했다. 나의 관심법을 애써 외면하는 A를 점심식사 핑계로 불러내고는 대화를 시작해 본다.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오늘 표정이 안 좋아?"
A는 큰 한숨만 내쉬고는 별일 없다 대답한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아 초조한 마음을 살짝 누르고,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평소 A답지 않은 표정을 보고 안 좋은 일이 있는지 걱정돼서 물어봤어.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괜찮아."
공감의 대화를 시도하자, A는 머뭇거리며 조금씩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 있었던 나의 상사이자 총괄리더와 B팀과의 회의에서 실망감과 분노를 느꼈다고. 본인은 리더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회사를 계속 다녀야 되나 고민한다 했다.
팀원 A는 우리 팀 소속이지만 주로 B팀과 업무를 하고 있다.
서로의 업무 연관성이 높아, 공동으로 일하면서 B팀과 한 식구처럼 지내는 사이이다. 어제 회의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리더가, B팀에서 나온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듣고 싶다 해서 마련한 자리였다. 리더와의 회의 자체를 엄청 불편해하고 어려워하는 B팀원들을 A가 달래고 구슬리며 참석하게 만들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 시간 넘게 진행한 회의의 방향성 자체가, B팀원들을 거의 취조하는 것 같은 분위기로 흘러가자 A는 참지 못하고 리더에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건 이미 하고 있었던 일이고, 어떤 걸 더 원하시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B팀원들은 리더의 눈치를 보느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YES라 대답하고 있을 때, 혼자 NO를 외치고 있었다. A와 리더 모두 급격히 표정이 굳어버리는 걸 눈치채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보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은 회의가 끝나고 리더와 따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리더 역시 나에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A님은 수용성이 부족한 분인가 봐요. 유연함이 떨어지는 것 같네요."
이 말을 듣는데 머릿속에 우르릉 쾅쾅 천둥이 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짧은 시간에 사람을 판단해 버리다니. 물론 완벽한 비밀을 보장하고 가볍게 건넨 말이었겠지만, 팀원에 대한 험담 같아 머릿속에서 피가 솟구쳤다. 결국 참지 못하고 반박했다.
"리더님도 이미 답을 정해놓고 아까 회의에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A님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렇게 말하면 딱 싫어할 거고, 딱 찍혀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될 대로 되라의 심정이었다. 내가 봤을 땐 서로의 생각이 확고하고, 서로 그 생각을 들을 여유가 없었던 것 같은데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하니 한쪽 입장만 보는 것 같았다.
사실 나의 팀원 A와 리더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각자의 신념과 생각이 단단하다. 그 신념을 토대로 일에서는 양보 없이 최선을 다해왔으며, 주변 사람들 모두 인정할 만큼 일을 잘한다. 다만 방식과 방향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두 번째는 눈치이다. 나도 눈치 하면 빠지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이 둘은 어나더 레벨이다. 하나를 얘기하면 열을 아는 수준이 아니라, 열 이후에 벌어질 것들을 미리 판단하고 짐작한다. 이때쯤이면 생각은 우주 끝까지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단 한 번의 미팅만으로 퇴사까지 고민하는 A와, 유연함이 부족하다 말하는 리더가 내 눈에는 똑같이 눈치의 달인으로 보인다. 생각이 두세 수 앞이 아니라 한 백수쯤 앞서갔달까?
마지막은 짱 쎈 자존감. 신념과 자신감을 합치면 자존감과 얼추 비슷할 것 같은데, 각자의 생각과 주장이 강하다 보니 방향성이 다르면 사실 부딪힐 수밖에 없다.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기에는 아직 둘 다 심적 물리적 여유도, 일을 공유할 시간도 없었다.
나의 눈에는 둘이 혹등고래와 대왕고래로 보였다.
존재감 작렬, 압도적인 크기와 힘으로 바다를 평정하는 그 둘이 바다에서 싸우면 어떻게 될까?
뭐,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되겠어. 그 사이에 낀 새우만 등이 터지겠지.
새우뿐만이 아닐 것이다. 바닷물이 아주 크게 출렁일 거고, 말미잘 고등어 해파리 모두에게 영향이 갈 것이다. 조용히 살고 있던 해초류는 뿌리가 뽑혀나갈 수도 있을 테니 더 억울하겠지.
고래 싸움에 낀 애꿎은 새우가 된 기분이 된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되나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냥 피해버리면 등은 터지지 않겠지만, 바다 생태계까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사실 둘 중에 누가 더 신경 쓰이냐 묻는다면, 당연히 팀원이다. 위에야 맘대로 판단하라지, 언젠가는 팀원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날이 오겠지 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 내 평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원래도 많이 해왔고, 내가 생각해도 쬐끔은 잘하는 것 같은 중간조율자 역할을 지금부터 해보려고 한다.
둘에게 선의의 거짓말을 하면서라도, 서로를 더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오해가, 억울함이 없었으면 한다. 결과가 어떻든 노력은 해봐야지.
이미 터져버린 새우등 말고도, 다친 고래 지느러미까지 신경 쓰느냐 바쁜 한 주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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