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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Sep 13. 2024

노래하는 입, 욕하는 입, 똑같은 입

같은 입에서 나온 다른 소리

퇴사하는 팀원의 환송회를 겸한 오랜만의 회식자리.

1차 삼겹살, 2차 맥주로 이어진 술자리의 흥이 깨질세라 누군가 외친다.

"노래방 가야지!"

윽, 노래방이라니. 역시나 이 주장을 하신 분은 꼰대력 만렙 옆부서 팀장님. 워크샵때마다 노래방 기기 대여를 요청하셨지만, MZ 팀원들의 투표결과를 들먹이며 한 번도 수용해 드린 적이 없다. 하지만 요즘 시대의 노래방은 어떤 곳인지 궁금하긴 하다. 기억을 끄집어 내보니 3년 전 딸내미와 갔던 코인노래방이 가장 최근이다. 모두들 머뭇거릴 새도 없이 우르르 맥줏집 지하 VIP 노래방으로 향한다.


노래방의 추억은 오래된 카펫과 소파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로 훅 치고 들어온다. 고등학생 시절 용돈만 생겼다 하면 가곤 했던 학교 앞 노래방을 그대로 재현한 느낌.  수능시험을 개떡같이 치르고, 같은 처지의 친구와 질질 짜며 노래를 불렀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조성모의 아시나요를 부르며 눈물 흘리다가, 김현정의 그녀와의 이별을 샤우팅 창법으로 부르며 불안한 마음들을 표출했더랬지.

찰나의 추억여행은 누군가 선곡한 박군의 신나는 노래로 잠시 중단된다.

"한 잔해, 한 잔해, 한 잔해~~~~~ "

구성진 목소리로 능청스레 손짓까지 곁들인 그는  이 노래방의 인기스타가 된다. 탬버린과 박수부대, 백댄서가 대동되고 여기가 곧 전국 노래자랑 무대다. 얼마만의 노래와 댄스타임인지! 얼쑤~~ 흥겨워 절로 어깨춤이 나온다.


몇 차례 노래가 돌고 돌아 결국 내 순번이 찾아왔다.

마치 문제를 풀지 않으면 빠져나가지 못하는 방탈출 게임과 같다. 3차를 빨리 끝내려면 누군가 아무 노래라도 불러야 한다. 남은 시간은 40분. 

침침한 조명에 작은 글씨까지, 예전과 다르게 노래방 책자에 적힌 노래 제목이 잘 안 보인다. 벌써 노안인가. 아무리 쳐다봐도 요즘 노래는 하나도 모르겠어서, 결국 90년대 추억의 가요를 소환해 본다.

"Hey hey hey~~~"

자우림의 헤이헤이헤이를 선곡하고 팀원들 얼굴을 살피는데, 다행히 다들 아는 눈치다. 고음불가인 내가 유일하게 소화할 수 있는 중저음 노래. 2차에서 마신 맥주로 목청이 트였는지 첫 소절부터 매끄럽게 소리가 흘러나온다. 팀원들이 '오~~~~'를 외치며 진심 놀란 표정이다. 평소 심각한 얼굴로 이것저것 시키기만 하는 팀장의 모습이 아닌, 노래를 부르는 일반인의 모습이 신기했나 보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는 시선을 가볍게 외면해 버리고, 노래에 흠뻑 젖어들었다.


분명 아까 오기 전까지만 해도 도살장에 끌려오는 기분이었다.

이미 시간은 밤 11시가 넘었고 경기도민인 나는 자정 안에 집에 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하필이면 내일 아침 7시에 잡아 놓은 영어 수업은 부담 그 자체였다. 하지만 노래를 한두 곡 부르다 보니 첫 마음과 다르게 신이 나기 시작했다. 어차피 조명은 어두웠고 다들 취한 상태였으며 음정 박자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다 같이 방방 뛰며 한마음으로 즐기고 있었다. 목이 아파 찢어질 것 같아도 떼창을 하며 서로의 노래에 호응했다. 

'노래방은 싫었지만 노래는 부르고 싶어' 딱 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맛깔난 가사에 음을 붙여 사람의 목소리로 내는 노래란 얼마나 근사한가. 노래가 너무 좋아 사무실에서 오늘 있었던 답답한 일들 따위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노래를 계속 부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요즘 욕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같은 입에서 나온 노랫소리는 어쩜 이리 다를까. 욕설은 하는 나도 듣는 누군가도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노랫소리라면? 부르는 사람도 즐겁고, 듣고 있는 청중들도 신이 나거나 감동을 받겠지. 한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 다 같은 소리가 아닌 것이다. 

노래가 따스한 색깔의 선한 영향력이라면, 욕은 청정수에 무단 방출한 오염된 물이다. 

먹는 입, 욕하는 입, 하품하는 입, 노래하는 입, 소리를 지르는 입, 뽀뽀하는 입 모두 같은 입이 하는 여러 역할이다. 그리고 이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게 할 것인지 내가 결정하면 된다. 

왠지 이왕이면 노래 같은 하루를 살고 싶어 진다.


#몹글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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