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지난주 금요일은 딸의 초등학교 생활 6년을 마무리하는 졸업식 날이었다.
평소에는 회사에 다닌다는 핑계로 딸의 학교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어, 엄마로서의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졸업식장으로 향했다.
강당을 메운 수많은 학부모님들의 인파 속에서 졸업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남편과 나는 언제 이렇게 우리 딸이 커버렸는지 실감이 안 난다며 소감을 나누었다.
유치원 졸업식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학생이 된다니 참 믿기지 않았다.
잠시 후 6학년 학생들이 강당으로 입장하고, 교무부장님의 개회사로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졸업식의 첫 순서는 각 반 선생님들이 준비하신 아이들과의 추억이 담긴 영상 시청이었다.
교실에서 가가볼을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 장기 자랑으로 마술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단체 사진 속 웃긴 포즈를 취하는 모습 등 여러 순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여 보여 주셨다.
그리고 나는 영상을 보며 갑자기 주책맞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영상은 1반부터 9반까지 순서대로 나오고 있었고, 우리 딸은 8반이라 아직 그녀의 모습이 나오기 한참 전이었는데도 그냥 눈물이 났다.
영상이 흘러 6반쯤 오니, 눈물이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어깨를 들썩이며 엉엉 울다가 콧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툭툭 치며 왜 우냐고 놀렸다.
심지어 장난기 많은 악마 같은 표정으로, 울고 있는 내 사진까지 연신 찍어댔다.
영상이 끝나고 집 나갔던 이성이 돌아와 울음을 그칠까 싶었는데, 곧바로 이어진 재학생들의 축하공연 앞에 나는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대회에서 수상까지 했다는 합창반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데 나는 왜 눈물이 나는지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겨우 정신을 차린 건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시작되고부터였다.
역시 학창 시절이나 학부모가 되서나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갑자기 '레드썬'이 걸리며 정신이 살짝 안드로메다로 향하게 되더라.
졸업식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내가 흘린 눈물의 의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실은 나는, 딸이 졸업장을 받거나 선생님과 인사할 때 내가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막상 이런 순간에는 아무 감흥도 없었다.
오히려 6학년 사춘기 학생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마이크에 대고 "자, 여러분, 이제 조용히 하고 자리에 앉아주세요"라고 계속 소리치는 젊은 남자 담임 선생님이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나는 왜 엉뚱하게도 내 아이가 나오지도 않은 영상을 보고, 다른 어린이가 합창한 노래를 들으며 눈물이 났을까?
이유를 고민해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선생님들의 마음에 대한 공감이었다.
1년간 함께한 아이들을 이제 다른 학교로 영영 떠나보내야 하는 선생님들은 정말 아쉽고 슬프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갑자기 들었기 때문이다.
막상 선생님들은 행사를 진행하며 정신이 없어 슬픈 감정보다는 행사를 무사히 마쳐야겠다는 책임감이 더 강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관람하는 제삼자의 입장인 나는 오롯이 내 감정에만 충실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주마등처럼 내가 슬퍼했던 또 다른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건 바로 결혼식장.
가까운 사람의 결혼식이건 사돈의 팔촌, 혹은 완전 남의 결혼식이건 나는 결혼식장에서 언제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특히나 신랑 신부가 부모님께 절을 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의 클라이맥스를 찍는다.
'엉엉엉, 엄마 아빠는 딸과 아들을 떠나보내며 얼마나 슬플까'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눈물을 흘리면 그런가 보다 싶을 텐데, 오늘 처음 얼굴을 보는 남의 결혼식에서까지 눈물을 흘리니 그동안 나도 참 주책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러다가 이번 딸의 졸업식에서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린 후 나를 다시 발견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떠나보내기를 잘 못하는 사람이구나.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엄청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상처받는 사람이구나.
이걸 숨기려고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인사를 건넨 적도 많았구나.
그리고 나는 한편으로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회사에서는 이성적인 페르소나로 항상 살아야 해서 잘 몰랐는데, 남의 행사에 한참 울다 보니 나는 타인의 슬픔에 같이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글을 쓰면서 이런 나를 또 발견해 나간다.
때로는 나의 싫은 면도 나쁜 면도 발견하겠지만, 나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나를 이해하고 나와 화해할 수 있는 과정이라 의미 깊고 소중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앞으로도 글을 계속 쓰며 나를 더 알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글루틴 #팀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