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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림 Jan 19. 2024

금쪽이는 과연 팀장인가 팀원인가

팀장들을 위한 금쪽 상담소도 만들어주세요

우리 회사는 2~5명 단위의 팀으로 구성된 조직이 모여 하나의 부서, 그룹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전체 50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에는 약 10명이 넘는 팀장이 존재하는 구조이다.


다양한 팀장들과 만나 가끔 누구에게도 내비치지 못했던 서로의 속마음을 꺼내는 경우가 있었는데, 나를 포함한 여러 팀장들이 이때마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팀장 안 했을 텐데."


팀장이란 어떤 존재인가.

팀장은 작던 크던 하나의 조직을 이끌며 책임을 지는 중요한 업무를 맡은 사람이 아니던가.

보통 조직에서 팀장으로 추천받거나 발탁된 사람들은, 팀원으로서 업무에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며 역량적으로도 탁월한 성과를 보여준 경우가 많다.

그리고 팀장 자리에 대한 제안이 본인에게 왔을 때,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은 하지만 결국은 팀장을 맡는 것이 새로운 업무 확장의 기회 혹은 다음 커리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수락하곤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팀장들은 팀장이 되고 나서 겪게 되는 이슈들로 자조 섞인 후회를 하게 된다.

팀장을 맡기 전까지는 이 자리가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힘들 줄 몰랐기 때문이다.

마치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육아의 어려움을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리라




최근 오은영 박사님의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속칭 금쪽이)'를 시청하며 팀장들의 팀 관리와 육아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프로그램의 서사를 살짝 가져와 이를 풀어보자면,


1. 우리 아이가(팀원이) 문제가 많은데, 왜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팀장이 되고 나면 팀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제까지 웃고 떠들었던 옆자리 동료가 아닌 내가 판단하고 점수를 매겨야 하는 상위자의 입장으로 변한다.

그럴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부작용이 있으니, 바로 '섣부른 평가'.

평가자의 색안경을 끼는 순간 팀원의 업무 방식, 태도나 표정 하나하나까지 내 기준에서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팀원들에게 마음에 드는 점 하나씩을 꼭 발견하게 된다. 신기하게 말이다!

A는 업무는 잘하는데 회의 시간에 집중을 못하고 졸고 있고, B는 발표는 술술 잘하지만 막상 업무 일지를 개판으로 쓰질 않나, C는 사람은 참 밝고 긍정적인데 업무 스타일까지 해맑아 지난달 실적을 못 채우고도 생각 없이 허허 웃기만 한다.


팀장이 되면, 팀원들의 여러 면모가 문제 행동으로 보인다.

'다른 건 참 잘하는데, 이 행동만 고치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팀원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런 문제 행동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하려야 할 수도 없다.

다 큰 성인들인데, 왜 생각도 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거지?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는, 아이의 문제 행동 때문에 고민하는 사연을 가진 부모님들이 나와 '문제아'를 키우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만약 팀장들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는 조건의 '금쪽같은 내 팀원' 프로그램이 있다면, 각자 팀원들에 대한 문제 행동에 서로 대해 말하느냐 성토 대회로까지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상상이 든다.


2. 아, 우리 아이의(팀원의) 속마음이 이랬구나

금쪽같은 내 새끼의 서사에서 가장 뭉클한 순간은, 바로 금쪽이의 속마음을 듣는 순간이다.

아쉽게도 회사에는 이런 코끼리 모양의 AI 스피커가 없어 팀원들의 속마음을 들을 기회는 흔치 않지만, 팀원들과 1:1 미팅을 하게 되면 둘만의 오롯한 대화 속에서 살짝 흘리는 그들의 진짜 마음을 들을 수 있다.


어제 회의 시간에 졸았던 A 팀원은, 실은 요즘 아이가 아파 밤에 도통 잠을 못 이루는 바람에 2시간을 겨우 자고 출근했다고 한다. 잠을 못 자는 것도 괴롭지만 몸이 피곤해 업무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팀장인 나에게도 그 모습이 안 좋게 보일까 봐 불안해한다.

본인은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잘하는 모습을 모여주고 싶은데, 뜻대로 안돼서 속상해하고 육아와 업무 사이에서 많이 고민하고 있어 보인다.


이렇게 고백하는 팀원의 속마음을 들으며, 팀장은 그제야 느낀다.

아,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겠구나.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 다가 아니구나. 팀원의 행동 너머에 있는 '선한 의도'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겠구나라고 말이다. (사실 이렇게 느끼게 되기까지도 연습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1:1 미팅을 하고 나니, 회의 시간에 졸던 팀원에 대한 혀를 끌끌 차던 내 시선이 그에 대한 짠한 마음으로 스르르 바뀐다.


3. 엉엉, 부모인(팀장인) 제 탓이었군요

B 팀원과 1:1 미팅을 하며 업무 일지 얘기를 꺼내본다.

실은 왜 업무 일지를 제대로 쓰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되어 여러 번 다그치며 채찍을 휘둘러 봤는데도 도대체 변화되는 게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의 열받음을 살짝 내려놓고, 'B님은 업무 일지 작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물어본다. 


평소답지 않게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본 팀원은 그제야 고백한다. 실은 이 회사가 처음이라 어떻게 업무 일지 작성을 해야 되는지 몰라서 고민했는데, 물어보면 혼날 것 같은 분위기라 가만히 있었다고.

그런데 팀장님이 계속 다그치시니 더 물어보기 어려워서 그냥 자기가 아는 선에서만 써왔다고. 

사실 말로 하는 건 다 자신 있는데, 정리, 특히 글로 표현하는 업무 일지가 본인에게 가장 어려웠다며 1시간 동안 힘들었던 속내를 내비친다.


팀원의 속마음을 다 듣고 난 팀장은 생각한다.


'아, 금쪽이는 B팀원이 아니라 나였구나.'


내가 다그치지만 않았어도, 그가 먼저 다가와 물어볼 수라도 있었을 텐데... 내가 그에게 심리적 안전감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도, 처음에는 아이의 문제 행동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님들을 보며 감정 이입을 했다가 결국은 이 문제 행동이 부모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팀장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문제 행동이 있는 금쪽이는 팀원이 아니라 나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부모의 양육 태도가 자녀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듯이, 팀장의 매니지먼트 스타일은 팀원에게 때론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나마 팀장들에게도 희망이 있는 건, 육아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겠지만 그래도 팀원들에 대한 애정과 팀에 대한 책임감으로 오늘도 꿋꿋이 버텨낸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팀장 안 할래'의 속마음은 아마도 '나는 팀장으로서 팀원들을 잘 케어하고 그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어. 그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어' 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인다면 팀원들의 성장에 기꺼이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지금도 팀장으로서 이런저런 이슈들로 힘들어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금쪽이도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본다.


#글루틴 #팀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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