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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커피챗 - 3년차, 흑화의 시작

퇴사가 마렵다

by 수풀림

'3, 6, 9 ~~~'

이 숫자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혹시 자동으로 삼육구 게임을 떠올리지는 않으셨는지요.

많은 직장인들에게 3이라는 숫자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바로 '위기의 숫자'라는거죠. 입사 3년차, 6년차, 9년차. 이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들이 있거든요. 회의감, 답답함, 번아웃 등등. 주변동료들을 둘러봐도 다들 비슷해요. 이 시기가 되면 누군가는 이직을 준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퇴사를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기도 하고요.


특히나 '마(魔)의 3년차'는 쉽게 넘기기 어려운 구간이에요.

신입이든 이직한 헌 직장인이든, 입사 3년차가 되면 공평하게 찾아오는 고비거든요.

"나, 요즘 너무 힘들어. 나한테 떨어지는 일은 왜 이렇게 많냐. 그런데 너무 하기가...싫다."

어느 날 동료 A가 하소연을 했어요. 요즘 회사의 모든 일이 그녀에게 몰리는 느낌이래요. 게다가 반복되는 야근에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이 나 번아웃이 온 것 같다고 하네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우중 그 자체에요. 마스카라보다 진한 다크서클, 세상의 모든 짐을 다 짊어진듯한 어깨, 땅이 꺼져라 내뱉는 한숨.

저는 곰곰이 A의 말을 듣다가, 돌팔이 의사처럼 진지한 얼굴로 진단명을 내렸어요.

"3년차 증후군."

잠깐이었지만,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요. 단비같은 웃음을 선물했으니, 작전 성공입니다.


그런데 진짜 이게 '증후군'이 맞기는 해요.

이제 막 입사한 1년차 때를 떠올려 보세요. 모든 게 신기하지 않았나요? 회사에 내 책상이 있다는 것도, 명함에 내 이름이 찍힌 것도, 하다못해 출입증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것까지. 비단 신입사원 뿐만이 아니에요. 이직한 분들도 마찬가지죠. 내 발로 뛰쳐 나온 전 직장에 대한 미련 따위는 묻어 두고, 어렵게 들어간 새 직장에는 두근두근 기대감으로 출근하잖아요.

하지만 3년차가 되면 많은 게 달라지죠. 저는 3년차에 가장 많이 보이는 증상을, '흑화'라는 단어로 표현해요. 흑화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콩깍지가 벗겨지는 거에요. 대신 시커먼 필터가 씌워지죠.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기대감은 이미 사진지 오래고요. 1년차에는 안 보였던 것들이, 이제 선명하게 들어와요. 비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 답답한 의사 결정, 바뀌지 않는 조직 문화. 일은 이제 손에 익고 할만해졌는데, 이상하게 불안감이 올라오는 시기에요. 이 조직에서,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죠.


직장인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3년차 흑화 시기.

우리는 어떻게 현명하게 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기회만 된다면, 3년마다 새로운 업무를 찾아보시라 조언하고 싶네요. 그 동안 정체되었다는 생각에 갑갑했던 마음을 뻥 뚫어주고, 성장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가장 빠른 처방전이니까요.

하지만 다들 아시죠? 요즘 일자리 시장에는 매서운 겨울 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는 사실. 게다가 어떤 회사에 들어가도 이 마의 구간은 다시 찾아온다는 사실도요. 아마도 지금의 업무를 계속하면서 흑화된 마음을 되돌리고 다독여가며 회사를 다니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겠죠.


3년차 고비를 6번 겪고 나니, 이 시기를 조금 더 잘 버티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먼저, 혼자서 끙끙 앓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 역시 혼자 마음속으로 북 치고 장구 치다가, 남들이 보기엔 아주 급작스럽게 "그만두겠습니다!"를 외친 경우가 많거든요. 내 고민을 말해봤자 아무도 해결해주지 못할 거란 생각이었어요.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생각보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이미 그 경험을 해본 선배들이나, 비슷한 걱정을 하는 동료들에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갑갑함이 조금은 해소돼요. 위로도 받고 연대감도 쌓이는 효과도 있고요.


두 번째로는 '관점 바꾸기'에요.

이게 가장 쉽지 않은건데, 다르게 보는 연습이랄까요. 매일 생각 없이 똑같은 일을 하는 걸 멈추고, 다른 각도로 관찰하는 거죠. 그리고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작은 부분을 찾는 거예요.얼핏 보면 똑같고 지루해 보이는 업무도, 조금만 다르게 접근하면 새로운 면이 보여요. '부정'의 필터 대신, '호기심'의 필터를 끼고 세상을 보는 거죠.

예를 들어 같은 보고서를 쓰더라도, 이번엔 데이터를 다르게 정리해본다거나, 새로운 툴을 써본다거나. 작은 변화지만, 이런 시도들이 쌓이면 일에 대한 재미가 조금씩 돌아와요.


'나 왜 이러지. 내가 이렇게 부정적인 인간이었나?'

직장인인 당신, 만약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면,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니까요. 3년차 직장인의 통과 의례랄까요. 그리고 콩깍지가 벗겨진 건 나쁜 게 아니에요. 1년차 때 못 봤던 걸 이제 보는 건, 어떻게 보면 성장의 증거거든요.

아마 지금은 더 커지고 새로워진 성장 욕구가 나에게 생겨서 힘든 걸거에요. 이 마음을 외면하거나 가슴에 묻어 두는 대신, 스스로 먼저 직면해보시라 권해 드리고 싶네요. 혼자 정리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고,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다 보면 어느새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 나를 만나게 되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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