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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온 Feb 20. 2023

중국 공항에서 다 뺏겨버린 화장품 120박스.

내일이 론칭쇼입니다.


중국 상해에서

19주년 론칭쇼를

기획하라고요?




2017년,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설립된 지 19주년이 되어가는 해였다. 화장품 사업 또한 중국에서 큰 성공을 이루었다. 병원의 자회사인 화장품 회사는 신생 브랜드였지만 중국행 브랜드였던 마스크팩 하나가 중국에서 500만 박스 이상이 팔리면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중국에서 유명한 한국 화장품이라고 하면 M사와 J사 정도 였는데, 그 상위권에 우리 회사 브랜드도 이름을 올린 것이다.



회사에서는 중국 사업을 더 확장하기로 했다. 중국 상해 푸동에 위치한 리츠칼튼 호텔에서 론칭쇼를 계획했다. 그동안은 박람회에 나가 바이어를 찾아다녔다면 이번엔 론칭쇼에 수만 명의 바이어를 초청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브랜드의 위상이 굉장히 높아졌었다.



어느 날 부사장이 나를 불렀다.



부사장    "박 대리가 론칭쇼를 기획해 봐. 이번에 출시할 브랜드 부스도 크게 기획해 보고,

               무대 위에서 제품 설명도 하고."



나        "네?! 부사장님 저 행사는 한 번도 기획해 본 적이 없는데요 ㅠㅠㅠ"



부사장   "박 대리가 기획한 브랜드잖아. 행사도 박 대리 색깔로 책임지고 해야지."




뭘 바라겠나. 이 회사에 입사한 이래로 내게 정해진 직무는 없었다. MD의 뜻이 '뭐든지 다한다'라는 말을 우스개 소리로 하곤 하는데, BM인 나는 '보이는 대로 무엇이든지 해봐.'라는 말이 딱 맞는 말이었다.


이젠 회사의 큰 행사를 기획을 하라니. 대리 밖에 안 되는 내 직급에 할 수 있는 일인 건가.


그러면서도 참 웃긴 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큰 일을 해 볼 수 있게 된 기회가 오다니, 한편으로는 기쁘기까지 했다. 승진을 위한 일이 아닌 그저 나 자신이 도전해 볼 수 있는 일. 나는 그런 애였다.

 

그때부터 온갖 론칭쇼와 박람회들을 시장조사 하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내가 기획하고, 출시할 화장품 브랜드는 전문의가 쓸 것 같은 콘셉트의 프리미엄 브랜드였기에 미적인 부분에 심혈을 기울여야만 했다.


프리미엄 하면 떠오르는 블랙 라벨, 블랙 카드, 블랙 드레스 등 고급스러움과 프리미엄 분위기라는 이미지를 색상을 중심으로 아이디어를 고안해 냈다.


그렇게 결정한 콘셉트 전시장 같은 부스 디자인이었다. 블랙 색상으로 가벽을 만들고, 선반 위에 제품을 전시하여 핀 조명을 쐈다. 전시장의 작품 아래 상품을 설명해 주는 글처럼 진열된 상품 밑에 상품에 대한 설명을 영문으로 작성했다.


지금은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왜 내가 알겠다고 했을까.' 후회가 될 정도로 매일 같이 울면서 기획했던 일이었다. 정말 독하다고 생각했던 나도 너무 처음 해보는 일이기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몰랐다. 며칠 동안 몰래 울어가면서 일했을 정도로 어려운 준비 과정이었다.


공간을 기획해 본 적도 없고, 난생처음 수많은 업체들을 직접 컨트롤해야 했다.


도움을 청하고자 상사에게 문의를 했지만 내게 돌아오는 건 '내가 왜 그걸 해야 돼?'라는 차가운 대답에 상처만 받을 뿐이었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그냥 했다. 눈물이 나도 했고, 잠을 못 자도 해내려고 했다.



그렇게 한 달여간 힘든 과정 끝에 행사 기획은 완료가 되었다.

이제 상해로 잘 넘어가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역시나. 순조롭지 않았다.





예상 못했던

시나리오.




중국 상해에서 런칭쇼 행사가 열리기 하루 전,

내가 기획했던 화장품 브랜드는 신제품이었다. 정식적으로 중국으로 가져가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때 당시 중국의 화장품 위생허가는 1~3년 정도가 걸리는 시간 싸움이었다. 회사에서는 론칭쇼 초대장을 증거로 삼아 화장품을 캐리어에 넣어 가져가는 걸 권했다. 같이 가는 직원들의 캐리어에 200개가 넘는 화장품 박스를 각자 나누어 가야만 했다. 공항에서 캐리어 검사에 걸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각자 32kg이 넘는 화장품이 든 캐리어를 1개 이상씩 들고 상해로 떠났다.


직원들은 두 팀으로 나뉘었다.

상해 푸동 공항으로 들어가는 직원들과 상해 홍차오 공항으로 들어가는 직원.


그중 나는 푸동 공항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행히 별문제 없이 입국 검사를 마쳤고, 문 밖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 때였다.



그때였다.

입국장 출입문 앞에서 무작위로 캐리어 검사를 하던 중국 직원들 중 한 명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자신의 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짧은 시간에도 머리가 복잡했지만 내 옆에 있던 직원 2명도 불려 가 함께 가야만 했다.


가정 먼저 나의 캐리어가 먼저 열렸다. 화장품만 있는 캐리어였다. 하필이면 화장품 디자인이 주사기에 넣는 병원의 유리 바이알 앰플처럼 생긴 화장품이었는데, 그때 중국 공항직원들은 약물이 아니냐며 다그치기 시작했다. 중국어를 할 줄 아는 한 직원이 이건 화장품이라는 설명까지 했지만 모든 화장품들은 반입할 수 없다며 나를 포함한 직원 2명의 캐리어까지 그 자리에서 뺏겨 버렸다.



론칭쇼의 초대장과 내용까지 설명하며 사정했지만 중국 공항의 직원들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캐리어까지도 돌려주지 않았을 정도였다.



한참을 실랑이하다 결국 공항을 빠져나왔는데,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한 달 넘게 준비한 론칭쇼를 망칠 것만 같았다.


분통이 터져 숙소로 들어가는 내내 얼마나 울어댔는지 같이 있던 관계자분들이 내일 행사할 수 있을지 걱정했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120여 개의 화장품 상자를 빼앗겼다.


다행히 홍차오 공항으로 들어온 직원들은 별 탈 없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20여 개로 최소한의 진열과 60여 개의 사은품으로 전략을 바꿔야만 했다.





다음 날, 예정대로 상해 푸동의 리츠칼튼 호텔에서 론칭쇼가 열렸다.

예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로 행사장이 가득 찼다. 전 날의 생각지도 못한 변수는 일어났지만 그 기분에 빠져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맡은 건 '행사를 기획하고, 완벽하게 끝내는 것.'이었다.




왼: 상해 푸동 리츠칼튼 호텔, 런칭쇼 현장 / 오: 신제품 발표하는 필자의 모습



행사날 새벽부터 부지런히 제품을 진열하고, 무대에 올라가 설명할 상품 소개를 숙지하고 또 숙지했다.


떨리는 마음을 설레는 마음으로 생각하며 새롭게 론칭한 내 상품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개했다. 울고 힘듦의 나날이었지만 그날의 그 뿌듯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또 한 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무대에 또 올라가서, 또 발표하고 싶어.'



그렇다. 내 천성이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좋아하고 자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듣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 지나고 나면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맞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었다.




'그땐 그냥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정확히 알고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일.'




그렇게 바이어들에게 테스터를 할 수 있는 물량이 없어 나는 무대 앞에서 상품과 사용감을 보여주는 전략으로 바꾸었다. 1:1로 대응하기엔 상품량이 부족하니 사람들을 모아 그룹별로 상품을 설명하며 행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긴 행사가 끝나고, 저녁시간이 왔다.

그날 회사에서는 수고했다며 상해의 야경 명소인 동방명주가 내려다보이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회식을 시켜주었는데,

그날 밤 상해의 동방명주가 이렇게 멋있는 줄 처음 알게 한 날이었다.  


그동안의 고생과 노력만큼이나 야경이 멋져 보이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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