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그랬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좋아하는 일도 그렇다.
대표 "이번에 상해 출장 좀 다녀와."
나 "무슨 출장이에요, 대표님?"
대표 "응, 일주일간 하는 교육인데, 회사 소개도 하고, 한국 뷰티랑 화장품 개발, 마케팅 교육이야.
네가 잘 만들어서 다녀와봐."
나 "대표님, 저 중국어 하나도 모르는데..."
대표 "응, 중국어 배울 필요 없어."
코로나가 덮치기 전까지 한류 뷰티, 한국 화장품이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었다. 중국인들이 성형을 받으러 강남을 가득 에워쌀 만큼 성형 관광의 붐까지 이어지자 중국에서는 한국 뷰티와 화장품 개발의 노하우를 알고 싶어 했다.
중국 출장 때마다 업체들은 내게 중국어를 배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설프게 중국어를 배워서 한국인이 아닌 조선족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그냥 순수 한국 사람 이 자체로 교육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커리큘럼을 열심히 짜보았다.
한국 뷰티의 화장품 트렌드야 너무 자신 있는 분야였고, 화장품을 기획하는 방법, 마케팅 전략 등 하루 8시간, 7일간의 강의를 만들어 내야 했다.
나는 입사 때부터 사수가 없었다. 직급이 높은 과장, 차장은 있었지만 상품 개발, 마케팅, 교육, 출장 등 아무도 내게 그걸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하라고 던져주는 사람들만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참 용감하고 무식했다.
준비하는 과정에는 막막하고,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중국 상해에 도착해 대형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뭔가 모를 설렘과 동시에 기분 좋음을 느꼈다. 내가 준비한 커리큘럼과 정보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일이 될 수 있다니.
회사를 대표하는 교육이었던 만큼 보이는 모습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우선 모회사인 병원의 이미지를 위해 실제 피부과 실장의 유니폼을 빌려 입어 한국 유명 뷰티 그룹에서 왔다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또한 중국에 가기 2주일 전부터 피부과에서 불필요한 피지는 압출하고, 집에서 각질 제거와 매일같이 수분관리를 해주며 피부관리에 더 꼼꼼히 힘썼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어떤 한 수강생이 질문을 했다.
수강생 1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피부가 좋아요?"
'아 됐다, 피부가 좋아 보인다는 말이구나. 적어도 내 강의를 사람들이 더 신뢰하고 들어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한국말로 강의를 하면 옆에서 중국어로 통역해 주는 식의 강의는 진행이 되었고, 일주일 간의 교육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강의가 모두 끝난 후 수강생들이 작은 케이크부터 고맙다는 작은 선물들을 건네주는데, 뭔가 모를 뭉클함이 들었다. 내 사진을 담아가는 수강생들을 보며, 마음 깊숙이부터 오는 뿌듯함까지 왔다.
매일 교육이 끝나고 나면 퉁퉁 부은 발을 벽에 올려두고 힘이 들었지만 다음 날이 기다려졌다. 그리고 모든 수업이 끝난 후 들었던 생각이 있다.
' 또 하고 싶다.'
그때는 몰랐고,
돌아보니 내 인생에서 이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개그콘서트를 따라 연습하며 전교생 앞에서 개그 연기를 한 일.
전학 가자마자 내성적이었던 내가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S.E.S의 I'm your girl을 준비해 춤을 춘 일.
중학교 때 춤이 좋아 점심시간만 되면 책상을 뒤로 다 밀어 넣고, 집에서 연습해 온 BOA의 춤을 추는 일.
댄스 대회에 나가기 위해 3년 내내 하교 후엔 밤 12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실에서 춤을 연습한 일.
발표를 하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철저히 준비한 후 발표를 해 1등을 한 일.
오리털 이불 판매할 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판매하다 전국 오리털 판매왕이 되어본 일.
쇼호스트 학원에서 완벽하게 준비해 경쟁 PT 1등을 해온 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며칠간 준비해 온 화장품 교육을 하고 나면 화장품 매출이 올랐던 일.
신입사원 교육에서 팀발표를 쉬지 않고 연습해 팀을 1등으로 이끈 일.
회사에서 상품을 소개하기 위해 모든 일보다 우선순위로 준비하고, 무대에 선 일.
생각을 정리해서 SNS에 글을 올렸는데,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하였던 일.
내 성과도 아닌데 회사의 행사 MC를 열심히 준비해 진행한 일.
회사를 대표해 모든 상품의 라이브 커머스를 준비해 출연하는 일.
과거에서부터 내가 반복적으로 하며 또 하고 싶었던 순간들을 보면 공통점은 누군가의 앞에 서는 일이었다.
내 시간을 줄이고,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바꿔가며 사람들을 만족시키거나 1등을 한 경험들이다.
"춤 진짜 잘 추더라."
"이런 말 잘 안 믿는데, 진심인 것 같아서 구매해요."
"교육을 듣고 나면 열정이 느껴져서 이 화장품 사야만 할 것 같아요."
"발표자의 능력은 이 정도가 돼야죠."
“글 보고 공감해서 저도 울컥했어요.“
"너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게 타고났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느꼈던 이유는
사람들이 내게 해주는 저 칭찬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며칠간 밥을 안먹어도 힘이 솟을만큼 행복해했다.
그리곤 꼭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또 저 무대에 서고 싶다.'
'또 행사를 진행하고 싶다.'
'또 발표하고 싶다.'
'또 출연하고 싶다.'
'또 글 쓰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잘하는 것, 깨달은 것들을 전달해, 영향을 주는 모든 일."
단순히 피아노를 좋아해. 음악을 좋아해. 그림을 좋아해 가 아닌
피아노로 무엇을 할 때, 음악으로 무엇을 할 때, 그림으로 무엇을 할 때 어떠한 감정이 나를 또 반복하게 하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를 찾고 나니 좋아하는 일에 대한 정의가 단순 명사로만 끝날 게 아니었던 것이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누군가가 했다는 그 말이
좋아하는 일 또한 그냥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3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