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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린 Mar 31. 2022

기록하는 사람 중에 성장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방법

 나 자신을 마인드맵의 주제로 두고 가지를 뻗어나가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며, 나의 삶을 차지하는 것들 중 가장 큰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바로 기록에 대한 집착이다. 일기를 쓰든, 사진이나 영상을 찍든 그 어떠한 행위로라도 기록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3년째 갖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위기의 순간에 닥쳤을 때 늘 나를 구원한 건 나의 기록물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시절 독서실에서 매일같이 나를 견디게 해 준 건 핸드폰 메모장에 필사했던 글귀였고, 반수를 하며 매일같이 밤늦게 버스에 올라타며 반복적인 하루를 마무리할 때 내가 제주도에서 여행하며 찍어둔 필름 사진들을 보면서 위로받기 일쑤였다.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높은 파도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안과 초조함의 대상이지만, 서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스릴을 안겨준다고 오스왈드 챔버스가 말했다. 내게 닥친 어려운 일은 나를 괴롭히는 요소가 아니라 나에게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함과 행복을 주는 조건이다. 인생은 수영이 아니라 서핑이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삶을 에는 바람 속에서.'

-이 글들은 내 일기장 여백에 빼곡히 적힌 문장들 중 극히 일부이다. 이 문장들을 필사할 때 느꼈던 생각과 감정이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감정의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이 문장을 본 후 나는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같았다. <2020년 4월 6일의 일기>




과거의 기록들을 보면 가끔 놀랄 때가 있다. 내가 남긴 기록들은 힘이 있었다. 내가 남겼던 활자들, 기록물들은 그저 단순한 지나온 나의 흔적들이 아니었다. 과거의 내가 남겼던 기록물들은 어느샌가 위대한 힘을 발휘해, 현재의 나에게 해답을 준다. 만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이 위기의 순간에 과거의 어느 순간들을 번뜩 회상하며 각성한 후에 악당을 물리치듯이, 나는 늘 위기의 순간들을 과거의 나로부터 도움을 받아 이겨낸다.




<활자를 통한 기록>

일기를 쓰며 과거의 나와 마주한다는 것



한국의 입시를 치른 경험이 있는 모든 이들은 수험생 시절을 떠올렸을 때, 주로 지치고 힘들고 치열했던 기억들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기나긴 시간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만이 가득한 터널 안에서 혼자 걷는 기분이었다. 다들 각자의 입시를 위해 친구들과 서로 모이는 시간이 줄어들고, 하교를 하고 난 후 새벽까지 독서실에서 수험공부를 하고 있는 기억밖에 없다. 늘 함께였던 친구들과는 잠시 거리를 두고 하루를 오직 혼자서 보내려니, 외로움을 많이 타고 사람을 좋아하는 내겐 그 시간들이 곤욕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외로움을 달래며 수험생활 동안 드는 모든 감정들을 기록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열아홉살, 수험생 시절 썼던 일기들

 일기를 쓰면서 사람은 참 단속적인 자아를 갖고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누군가 때문에 화가 나고 속상한 일이 있다고 일기장에 적어놨지만, 오늘 본 지난주에 내가 썼던 글은 마치 남의 글을 본 것 마냥 이질적이게 느껴진다. 다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 시간에 살고 있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이런 감정들을 갖고 있구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나는 일기를 통해 그 시절의 나를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도덕적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오만했던 그 시절을 바라보면서 나의 모난 부분들을 인정할 용기가 생겼으며 다짐을 되새기고 나를 조금씩 천천히 되고 싶은 나로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생긴 버릇이 있는데, 일기를 쓰고 난 후 남은 공간에 꼭 파란색 볼펜으로 문장 필사를 하는 것이다. SNS에서 보이는 감성적인 글귀, 신문 기사, 또는 좋아하는 시인이나 방송인들의 인터뷰를 발췌해 남는 부분에 적는 것이다. 독서를 즐기지만 그럴 틈이 없었기 때문에 짧지만 강한 문장 필사를 일기장에 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나는 문장 수집가였다. 고등학교 3학년부터 재수생활을 하던 심적으로 많이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난 닥치는 대로 문장들을 수집했다. 위기의 순간에는 말이 늘 간절하게 들렸다. 내 인생에 흡수할 가치가 있는 문장들을 모았고 그것의 수는 족히 삼백 개가 넘었다. 문자가 주는 힘은 매우 강했다. 문자를 적는 행위를 통해 그 문장들은 어느새 나의 것이 된다.     





<과거의 순간들을 봉인한다는 것>

카메라를 통한 기록



사진도 마찬가지로 내게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사진은 고등학교 3학년 현역 입시가 끝난 이후부터 찍기 시작했다. 나는 미대 입시를 했고, 정시를 준비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늦은 스무 살 2월에 모든 입시가 끝이 났다. 내 인생의 첫 카메라는 그 시기에 우연히 동묘시장에서 5만 원을 주고 산 작고 볼품없는 중고 필름 카메라였다. 삼성에서 출시했던 케녹스 z130s. 나는 그것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길에 오른다. 그리고 이 작고 볼품없는 카메라가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요즘은 필름 카메라 하면 누구나 한 명쯤은 갖고 있을 유행 아이템이지만, 나는 필름 카메라를 유행하기 이전부터 사용했다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다 쓰는 필름 카메라지만, 내가 필름 카메라를 쓰던 시절에는 정말 나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라는 게 생소하던 시절, 주변 사람들은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며 신기해했다. 그렇게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 ‘나’하면 ‘필름 카메라’였고, ‘필름 카메라’하면. 내가 떠올랐다고 한다. 나를 보고 필름 카메라에 입문한 주변 지인들도 많았고, 필름이나 카메라 조작법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많았다.


2020년 3월, 제주도 산방산 유채꽃밭
2020년 3월, 제주도 백약이 오름
2020년 3월, 제주도 오설록 녹차밭


 필름 카메라의 묘미는 기다림이라는 것이었다. 28장 또는 36장까지 사진을 다 찍어야만 그 필름을 꺼내서 현상을 맡길 수 있고, 또 사진을 메일로 받을 때까지 느껴야 하는 그 기다림은 정말 짜릿하고 설렌다. 나는 친구들과 떠났던 제주도 여행에서 찍었던 필름들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던 그 떨림과 설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진을 본 순간, 행복했던 여행 속 시간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이미 여행을 갔다 와서 현재를 살고 있는데, 그 사진들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사진 속의 시간으로 초월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그 순간을 영원히 멈춰서 기록한다는 것.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는 마법사가 된다. 사진이라는 것은 내게 있어서 그저 취미가 아닌,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쉼터였다. 위축되고 뒤틀릴 때, 나 자신이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 나는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본다. 그럼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긴다.  


 내가 멈춰놓은 시간들은 '넌 이렇게 멋진 사진을 찍을 줄 아는 대단한 사람이야'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실제로 나는 반수를 하며 인생 밑바닥을 찍었을 때, 내 사진들을 보고 다시 일어났다. 집 가는 길 학원 버스 안에서, 나는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아직까지도 그때를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다. 셔터를 누를 때 잊고 있던 그 시절의 감정들이 다시 피어올랐다.





 그렇게 나는 그 뒤로 사진을 찍기 위해 살아간다. 무조건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사진을 찍어야 했고, 더 좋은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내가 또래보다 조금 일찍 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사진을 찍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작년 나는 경주, 강릉, 속초, 연천, 부산, 제주도, 단양 등 국내를 중심으로 학교를 병행하며 여행을 다녔다. 단순히 사진을 찍기 위함이었다. 삶이 바빠져 사진을 찍지 못했을 때는 우울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매일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사진은 이제 그저 취미가 아닌 나의 습관이 되었다. 아무래도 평생 함께할 습관인 것 같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빛을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단 한걸음도 뗄 수 없었고, 그 자리에 서서 각자의 노을을 프레임에 담을 뿐이었다. 모네는 빛과 시각에 따라 변화하는 그 순간의 인상을 담아내기 위해 같은 장소에서 같은 그림을 몇 번이고 그렸다. 그렇지만 그건 분명 다른 그림이었다. 모네는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런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고 있던 걸까. 이 빛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붓을 들었던 것일까. 나도 이 순간을, 지금 이 파도에 부서지는 별들을 영원히 봉인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든다.

- 2021년 6월 30일의 일기


 

 그날 부산 다대포에서 본 일몰과 같은 빛이었을까. 새벽과 아침 사이의 파스텔톤 빛 시간대를 온몸으로 맞이하며 응어리진 모든 부정적인 마음들이 씻겨 내려간다.

- 2022년 2월 2일의 일기





 나는 그렇게 기록에 집착을 하게 된다. 기록물을 통해 이런 생각을 가졌고, 그때 느꼈던 생각들로 힘을 얻게 되기도 한다. 늘 위기의 순간을 격파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듣는 나는 그 조언을 들으면서 얻은 생각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머리에 다시 한번 각인하기 위해 일기장에 옮겨 적는다. 그리고 반복하고 반복한다.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다짐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매몰되어 그 다짐을 종종 까먹을 때가 있곤 한다. 그럴 때마다 예전에 꺼내 둔 일기들을 보면 그때 느꼈던 열정들이 다시 타오른다. 나의 마음에 다시 불이 붙는다.


 그 시절의 내가 기록을 하지 않았다면, 그저 물 흐르듯 감정을 다 흘려보내면서 살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종종 생각을 해본다. 수험생 시절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일기장. 표지가 예뻐서 사두고 방치해둔 그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다면. 아빠를 따라간 동묘시장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그저 둘러보고 나왔다면. 그 손짓 하나에, 작은 선택 하나에 내 인생이 달라졌다. 고난이 나를 성찰의 길로 인도했다.


 삶이란 무엇인가?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죽어야 할 이유도 없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명확하게 제시된 바가 없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도 삶이 어려워 방황하는 어른들이 존재한다. 지금도 난 물론 어리다. 그렇지만 내가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면 뭔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그냥 나는 이곳에 존재하고 시간만 흘러가는 것이었다. 물론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세월의 변화로 주름진 엄마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겠지만, 그래도 난 그게 좋다. 태어났을 때부터 삶의 목적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난 그냥 잉태되어 세상에 나왔고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일뿐이다.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생각들, 내 걸음걸이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들고 내 삶을 이루어 내 인생이 되겠지. 그럴수록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말들로 나를 이루어 결국엔 내 인생은 사랑이 가득 넘쳤으면 좋겠다. 차분하게 사랑하고, 양가감정 없이 신뢰하고, 자기 조롱 없이 소망하며, 용기 있게 행동하고, 무한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될 것이다. 단순하게 태어나서 사는 삶 말고, 기록를 통해 나의 신념을 세우고 단순하고 단단하고 단아하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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