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은 사춘기 전단계란다. 손자의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달린 시간과 거리를 계산하면 얼마쯤 될까. 많이 보고, 많이 느끼길 바라며 아이의 작은 손을 이끌고 한강에도 가고, 동물원에도 가고 대형마트도 가고, 서점에도 가고, 시장에도 가고, 어린이 도서관, 이모할머니댁에도 가면서 아이의 성장을 관찰하는 일은 큰 즐거움이다.
손자의 세계는 단순하면서도 순도 높은 예술가적 호기심이 들어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동안 마치 낯선 곳을 여행하는 기분, 새로운 것과 만나는 떨림, 발견이 있다.
한여름의 놀이터는 얼마나 신비로운 곳인가. 각종 벌레의 이름을 알아가는 길이기도 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명이 있는 것들을 만지고, 느끼고, 때로는 작은 발로 개미의 뒤를 밟다가 짓궃게 죽여버리기까지 한다. 이때 개미를 죽이는 일은 아이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는 장으로 쓰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이 앞에서 작은 벌레인 모기를 죽이며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 망설이게 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이사를 한 지 3개월이 되던 어느 날부터 어린이집 알림장에 꼬박꼬박 쓰던 답글을 쓰기 않게 되었다. 이웃집 아이의 일이었으면 4살이라면 흔히 있는 일로 가볍게 지나갔을 일이 내 아이 입장이 되고 보니 묘했다. 아이의 하루 일과를 알림장으로 읽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그 일과중 일부분이 친구를 괴롭혔어요, 놀이를 마치는 시간에 더 놀고 싶어 하며 말을 듣지 않아요. 선생님을 발로 찼어요. 라는 글을 읽고 고민하지 않을 부모가 누가 있을까. 열심히 답글을 적었다. 그리고 네 살 아동이 자신의 고집을 부리며 바닥에 누워 떼를 쓸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궁리했다. 적어도 친구가 자신이 하는 행동을 싫어 하는 것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했다.
월요일 아침 손자를 데리고 등원하며 이런 것들을 상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이에 대한 상담을 한다기 보다 나쁜 행동을 차례차례 열거 하며 보호자인 나에게 이르는 느낌을 받았다. 내 앞에 아이의 선생님이 계신데 선생님의 얼굴이 차츰 조카 또래의 어린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에 대한 애정과 성장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적어도 손자가 원으로 들어 간 다음에 했어야 할 말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지만,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금요일에 알림장에 답글 드리지 않은 건 만나서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할머니와 상담을 해야 할지, 어머니와 해야 할지, 고모할머니와 해야 할지 망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원장선생님께 문자를 드린다.
아침에 노랑반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아이가 선생님께서 자기 잘못을 저에게 이르는 거라고 오해할까봐 걱정이 되었어요. 알림장에 답글도 없고, 전화상담도 없이 아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단점만 듣고 월요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살짝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사실 자기주장이 강한 이 시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좀 힘이 들어서요... 답은 사랑으로인데 과정이 어려운 것 같아요. 손자가 친구들을 괴롭힌다는 알림장을 받고 어떻게 아이를 지도해야할지 고민하다가 문자드렸어요.
이윽고 긴 답장이 도착했다.
네 그러셨군요. 선생님께서 알림장 답글을 안 쓴 것은 아마도 어머니나 고모님을 뵈면 얘기 하려고 그러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에 대한 상담을 어머니랑 통화를 해야하는지 고모님이랑 통화를 해야하는지 고민하시다가 전화상담도 망설이셨던 것 같습니다. 4살 아이들이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또래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는데 충돌이 자주 발생하고 있긴 합니다. 어린이집에서는 다른 친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안 되는 행동임을 알게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친구를 아프게 하는 행동을 할 때 이해할 수 있도록 반복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4살 아이들이기 때문에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아이가 더 크면 잔소리라고 듣기를 싫어하는데 듣기 싫어하는 나이가 되기 전에 기본생활형성과 타인에 대한 배려는 가정에서도 반복적으로 일관해서 이야기하는 방법이 가장 좋습니다.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에 아이의 좋은 점도 많은데 아이의 나아졌으면 하는 점만 말씀드려서 선생님도 속상하다고 하시네요. 그런 부분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간 후 말씀드리긴 하는데... 죄송합니다. 지금 물놀이를 시작했는데 아이가 많이 재밌어 합니다.
답글을 부지런히 쓴다.
손자의 환경이 얼마나 걱정이 되는지 모릅니다. 사회는 편모가정의 자식을 편견으로 끌어놓습니다. 누구와 상담을 해야할지 고민이 되어 가족 아무에게도 답을 안 했다면 알림장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가족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알림장이 효과를 발휘했기에 오늘 제가 원장선생님께 상담을 드릴 수 있었던 겁니다. 조금만 달리 생각해주시면 어떨까요. 어른들이 엄마와 해야할지, 저와 해야할지, 할머니와 해야할지 망설이는 동안 아이는 편견 속에 성장하는 게 아닐까요. 아이가 그렇게 친구를 괴롭히는 형태로 굳어지는 건 아닌가 그게 더 걱정입니다. 집에서도 끊임없이 반복 지도하겠습니다.
그동안 조카들의 보호자, 엄마로 살아오면서 선생님이나 같은 반 학보모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던 자신이 있다. 아니 그들로부터 내면의 목소리 '당신은 엄마가 아니잖아'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왜일까. 자격지심일까? 조카들조차도 정서적인 면이나 경제적인 면이나 다른 모든 것들에 책임을 지고 있는 고모를 엄마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내 사랑을 굴절시켜 받아들일 때가 있었다. 성장기의 조카들은 아직 여문 생각을 못해서 다른 엄마들과 비교하여 고모니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남의 가정이 더 행복해 보이기 마련이어서 다른 엄마와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신호에 가까웠다. 그러나 사회는 다르다. 그리고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을 떠올려본다.
고모가 엄마인 아이도 있고, 할머니가 엄마인 아이도 있고, 엄마가 둘인 아이도 있다. 삼촌이 아빠인 아이도 있고, 할아버지가 아빠인 아이도 있고, 아빠가 둘인 아이도 있다. 우린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으나 평소에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억지일까. 예외된 자, 남들과 다른 자, 소외된 자를 사회는 자꾸 구석으로 밀어버리는 게 아닌가. 목소리를 낮추라고, 조용히 있으라고.
나는 4살된 손자가 다른 아이와 마찬가지로 개구쟁이라서 엄마의 고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누구와 상담할지 망설였다는 말로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 문제를 놓고 보게 되었다. 만약 월요일 내가 아닌 할머니가 가셨다면, 그때도 그런 말을 하셨겠지. 엄마는 직장에 일찍 출근해서 어린이집 졸업식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겠지. 어른들이 누구와 상담할지 망설이는 동안 손자가 그렇게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가 된다는 사실,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월요일 아침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가 나와 선생님과의 대화를 들었다면... 망설였다는 말 속에 지닌 편견이 그대로 그들 부모에게도 전염병처럼 돌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지나친 생각일까.
손자의 머리 위로 손을 얹고 생각에 잠긴다. 친구를 괴롭혔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안 된다고 알려주기 전에 '아이야 너를 그렇게 대하는 게 아니었단다. 그리고 엄마가 어린이집에 데리고 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단다. 아빠가 어디 있느냐구? 아빠는 아빠 집에 있단다. 때로는 엄마아빠가 같이 살 수 없을 때도 있거든. 아니아니 아빠는 회사에 갔단다. 이런 거짓말을 4살인 너에게 해도 되겠니? 또 한 번 미안하구나.'
손자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친구 안 때렸어.'
아직 어리지만 어른들의 말을 다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의 수확이다. '참 잘 했어.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놀고, 말 잘 들으면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가 터닝메카드 선물해 주실거야.'
편모가정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아빠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문제를 판타지로 말해 주어야 할지, 사실적으로 말해 주어야 할지 내가 망설이는 동안 아이의 성격에 미칠 영향은 또 어떻게 될까. 나는 손주의 손을 잡고 수많은 아빠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시간 전철을 타고 끊임없는 질문에 답한다. '쟤는 어디 가는 거야?' 아무리 봐도 손주가 쟤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다. '쟤라고 하면 안 되는 거야. 할아버지는 어디 가시는 거야? 해야지. 쟤라고 하는 건 친구한테 쓰는 거야. 할아버지는 집으로 가시는 거야. 저녁이 되면 모두 집으로 가는 거야. 맘마 먹고 코~ 자야 아침이 오지.'
아이는 깡총 뛰며 '코~ 자야 아침이 오지' 하고 자신만의 음율을 넣어 기분 좋게 따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