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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하나를 소유한다는 것, 그것도 이국에서 자신의 몸을 눕힐 방 하나를 가진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까다로운 일본의 부동산 문화 때문입니다. 오치아이의 방은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이사를 가고 싶었던 예전 방주인이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저와 새로 계약서를 쓰도록 알선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네모난 방을 얻기 위해 선불 월세 2만 9천 엔과 보증금 2만 9천엔, 그리고 방을 빌려주어서 감사하다는 명목의 레이킹으로 5만 8천엔을 지불했습니다. 엔화 환율을 1000원으로 했을 때 약 120만 원 정도를 가지고 방을 얻는 데까지는 좋았으나 그 방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오치아이의 네모난 방 하나가 떠오릅니다. 다다미 4조 반의 공간에 한국에서 가져 온 솜이불 한 채가 놓여 있습니다. 가구라고는 먼저 살던 유학생이 남기고 간 책상과 책꽂이가 전부였고, 그 책꽂이조차 텅 비어 있습니다. 3단 이민 가방에 챙겨 온 코펠로 밥을 짓기 전에 양쪽 벽으로 난 커다란 창문이 신경 쓰입니다. 게다가 창밖에는 가로등까지 있습니다. 커튼을 대신할 것이 있나 가방을 뒤집니다. 한국에서부터 가져 온 한지가 나옵니다. 창문을 장식합니다. 각각의 창에 노랑, 빨강, 노랑, 연두빛 한지를 마름모꼴로 붙여두자 햇볕이 잘 들오는 날 창문을 열면 노랑과 빨강이 겹쳐지면서 방 안을 오렌지 빛으로 물들입니다.
어린왕자의 별에서는 의자를 옮기기만 하면 해지는 노을을 볼 수가 있다지만, 제가 사는 오치아이 별은 창문만 열면 노을을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방에 서서 천장에 달린 전등 줄을 잡아당깁니다. 덧문을 닫으면 완벽한 어둠 속에 잠들 수 있지만, 저는 그 방을 떠날 때까지 한 번도 덧문을 닫지 못했습니다. 한겨울 추위로 이를 덕덕 갈아도. 아시나요? 덧문을 닫지 않으면 나의 방은 별이 되지만, 덧문을 닫는 순간 나의 방은 상자로 변하고, 나의 잠은, 나의 꿈은, 나의 무의식은 영영 우주를 가로질러 지구별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것을.. 나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돌봐야 할 가족이 있어서 나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라는 의지의 상징이 바로 덧문이었다고.. 이렇게 해서 저의 오치아이의 방에 불을 끄고 누우면 골목길로 난 창가의 가로등 불빛이 마치 판화에 새겨진 잔물결처럼 솜이불 위로 제 몸을 따라 문신을 그려줍니다. 11월의 찬기가 올라오는 다다미 방 위에 두꺼운 요를 깔고 목까지 솜이불을 덮은 저는 눈만 깜박이다가 하나둘셋 하고 잠이 듭니다.
꽃피고 새우는 찬란한 봄밤에 오치아이에서 맞은 첫 번째 겨울을 추억하는 것은 왜일까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둘셋 하고 잠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