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쿄 3부작

헌책방 아저씨 이야기 11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by 이은주

언젠가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어요. 이번에도 헌책방 아저씨를 우연히 역 앞에서 만났지요. 저와 함께 서면 키가 비슷할 정도로 아저씨는 무척 외소한 분이셨어요. 그런 아저씨가 어깨에 뭔가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어요.

어디 가세요? 하고 제가 묻자,

골프치러. 라고 대답하십니다.

전철을 타고 골프를 치러 가시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저에게는 아주 이상하고 재미있게 보였던 기억이 나네요. 한번은 교양과목으로 듣던 재즈 수업 과제물이 재즈 콘서트 감상문 쓰기였어요. 저는 한여름밤의 콘서트에 아저씨를 초대했지요. 우리는 묘한 2인조였을 거예요. 대부분의 청중이 학생이었을 텐데 그 부분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콘서트 관람 후 야외 간이 의자에서 느긋하게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 온 추억만이 남아 있습니다. 묘한 2인조는 기분이 좋아져서 전철 안에서도 드문드문 웃었던 것 같아요.

하나 더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해지기 전에 기록해 둘까 합니다. 어느 날 아저씨는 오치아이에서 제법 깔끔한 술집으로 저를 초대합니다. 재즈 콘서트에 대한 답례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아저씨 입장에서는 가장 고급스러운 접대가 아니었을까요. 그곳에서는 동남아시아계 아가씨가 주문을 받고 있었어요. 아저씨는 레스토랑의 콧수염 아저씨에게 소개했듯이 또 그렇게 소개를 하시더니 마침내는 이런 주문까지 덧붙이셨어요. 이 학생이 오면 후지와라 다케시 이름의 양주를 내주라고요. 아시지요? 술고래에게 있어서 이 제안이 어떤 의미인지? 이것은 어마어마한 호의였다고 지금도 저는 믿습니다. 아저씨조차 평상시에는 우메슈나 추하이를 드시는데 말이지요. 어쨌든 싫지는 않았어요. 그 술집에는 술보다 4, 50년은 더 오래된 사람들이 가득 모여서 싸구려 양주에 얼음을 잔뜩 넣고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곳이었으니 제 눈에는 신기하기만 했으니까요. 그 술집에 가면 아저씨 이름으로 된 양주가 아직도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학을 졸업 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한 저는 꿈에 부풀어 귀국을 합니다.

출판사를 전전하면서 매년 도쿄도서전에 다녀오면서도 저는 아저씨를 만나지 못했어요. 회사에서 보내준 도서전은 늘 안내해야 할 상사가 곁에 있었고, 한시도 자유시간이 없었기에 늘 오치아이를 그냥 지나치기만 했지요. 귀국한 지 사오 년이 되었을까요. 어느 날 아침 전화가 울렸어요. 아저씨였죠.

아저씨는 천천히 말씀하셨습니다.

입원해 있었어.

입원하고 있는데 문득 네 생각이 났어.

나는 지금 건강해. 술도 끊었어.

도쿄에 오면 꼭 들렸다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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