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으로 저자특강 의뢰가 왔었다. pdf파일도 어찌어찌 만들어서 제출했고, 강사 프로필 서식도 보냈으나 제일 중요한 강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 실시간 줌강의로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같은 전문가들과 어떻게 하면 소중한 한 시간 동안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로 소통할 수 있을까. 버벅대지 않으면서 시간 내에 할말은 할 수 있도록 강의안을 짜고 싶다.
* * * 안녕하세요. 저는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를 쓴 이은주입니다. 제가 말을 좀 느리게 하는 편인데 이점 양해를 구합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아픈 남동생대신 조카들을 돌보고, 그 다음은 조카딸이 낳은 손자를 돌보는 동안 경력단절여성이 되었어요. 게다가 유학까지 다녀온 제가 돈을 못 번다며 엄마는 말씀하셨지요. 엄마의 주변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조카들을 돌보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화가 났어요. 게다가 자사고에 다녔던 막내조카가 삼수를 하겠다는 말에 뒷목이 뻗뻗해지기도 했구요. 저는 경도발달장애인 손자를 돌보며 조금 다른 요양보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일자리가 없어서, 경력단절이 되어서 억지로 남의 기저귀나 가는 것 말고, 내가 선택해서, 일하고 싶어서, 또는 돌봄을 받는 사람이 바로 나였을 때 받고 싶은 가치를 중심에 두고 싶었어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여성의 돌봄을 경시하는 태도에 분노했어요. 그 분노 안에는 나를 키워준 할머니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린 고단한 삶에 대한 원망도 섞여있었지요.
사실 저는 이번 강의가 자칫 책소개로 끝이 나면 어쩌나, 자기자랑에 그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친구들 의견을 들어보았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조언이 있어서 오늘 소개하기로 합니다. 같은 돌봄종사자이기는한데 대상이 영유아인 '시소와그네'라는 영유아통합지원센터장의 조언인데요. 여기 그녀가 조언해준대로 옮겨보겠습니다.
강의 마지막에는 돌봄종사자 분들에게 용기와 위로가 되는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요. 그리고 조금만 용기를 내라는 말과 더불어 책을 읽는 습관을 공개하라는 거예요. 저는 정말이지 이 습관은 부끄러워서 공개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는 요양보호사로서 재가방문 일도 하고 초등학교 저학년인 손자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면서 글을 써왔는데요. 책을 사면 그날 읽을 만큼 분철을 해서 나가요. 주머니에 넣고다니다가 틈만나면 읽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미처 다 읽지 못했으면 전철 의자에서 읽고 쓰레기통에 버리고 와요. 이것은 국제공항에서 근무할 때 배낭여행객이 읽고 버리고 간 책을 보면서 따라하게 되었어요. 책을 사두고 읽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하나라도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고 싶었어요. 물론 책을 다 읽고 아 이 책은 소장하고 싶다고 생각한 책은 다시 산 적도 있어요(버리지 못하고 들고 와서 분철한 상태로 있는 책도 있어요).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는지 자신에게 묻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에요. 책을 읽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는 거에요. 그렇다고 모든 책을 찢어서 읽지는 않아요. 베란다에서 세탁기 돌아가는 동안 읽는 책, 부엌에서 밥하는 동안 읽는 책,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읽는 책이 다 달라요.
오늘 집에 가시면 언젠가 읽으리라 사놓은 책 한 권을 집어들고 내일 읽을 분량을 한번 찢어보세요. 처음에는 10쪽 정도로 시작해도 좋아요. 저는 적게는 30쪽, 많게는 50쪽을 분철해서 읽지요. 책이 주머니에 있는 한 읽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요. 전철을 기다리면서, 혹은 병원 대기실에서, 계산대 줄을 서면서도 읽을 수 있지요. 요즘은 더 대단한 게 있어요. e북이 발달해서 오디오북으로도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정서적 지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우울증이나 치매를 앓는 어르신을 돌보는 경우 대부분의 경우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치게 하거든요. 그래서 요보사 선생님들께 1인 1책 만들기. 혹은 요양보호사분들께 글쓰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글을 쓰면 감정이 정리도 되고, 상처도 어느 정도는 치유가 되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름으로 된 한 권의 책을 만들어 가족과 이웃에게 남기는 작업은 매순간 돌봄의 손길을 자극하게 하는 기폭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돌봄노동에 대한 자존감 내지는 전문성을 강화함으로써 돌봄노동의 처우개선이라든지 인식개선을 할 때 각자 목소리를 갖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