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 소설

시인의 집

by 이은주


시인 언니가 서울 생활을 접고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간 이후 간간이 전화 통화만 했지 몇 년 동안 얼굴을 못보았다. 내가 보기엔 너무 이른 은퇴였다. 잘 나가던 편집자였다. 그녀의 손으로 만든 책들을 나는 좋아했다. 대학 문예과 동기며 선후배가 포진해 있는 출판계에서 그녀의 입지는 꽤 단단한 걸로 아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고향으로 내려가버렸다.
데스크를 둘러싼 암투, 세력 다툼에서 이상하게 시인들은 악마가 되고는 했다. 욕망의 끝을 보여주고는 했다. 시를 쓰는 일과 삶을 사는 일은 자주 피 튀기는 전쟁이었다.
시인 언니가 고향으로 내려간 후 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없이 꾸역꾸역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편집부에 낙하산을 타고 온 방송작가라는 친구의 입담에 밀려 편집을 하려는건지, 책장사를 하려는건지 궁지로 몰리는 기분이라 사표를 던지고 나와버렸다.
아무 계획 없이 나오긴 나왔으나 다른 일을 하려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나로서는 고만고만한 편집부에 이력서를 내고 다시 출근을 하게 되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게 되면 새로운 업무 파악으로 바빠질 테니 이참에 시인 언니를 보고 오고 싶었다. 언니는 반가와하며 오는 길을 일러주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해남행 버스를 타고 해남에서도 시골 버스를 타고 한참 더 들어가는 곳이 시인 언니의 집이었다.
언니는 몰라보게 여위었다. 그녀의 집은 너무나 넓어서 여윈 언니가 건사하기에 벅차보였다. 이곳에서 다섯형제들과 학창시절을 보냈구나 언니는... 내가 가족사진이 커다란 액자에 붙어있는 벽을 향해 서있자 언니는 그리운 얼굴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날 밤은 언니 곁에 이불을 펴고 누워서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들었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나마 3년 동안은 아픈 어머니 간병을 하면서 얼마 안 되는 밭에 농사를 짓느라 힘에 겨웠다고 했다. 시인 언니는 중학교 때부터 서울로 유학을 가서 사실 시골 생활에는 서툴기만 할뿐 언제까지나 익숙해지지가 않는다고도 했다. 이웃이 허락도 없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통에 여러 번 놀라 자빠질 뻔했다고도 했다. 혼자서 차려먹는 밥상이 매번 귀찮다면서 서울에서는 문만 열면 식당이고 전화만 하면 배달이 되는데 이곳은 그렇지 못하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시골 집에 남아있는 언니가 나는 이상하고 이상했다. 서울에 정나미가 떨어진 것 같았다.
새벽에 인기척이 나서 눈을 떠보니 시인 언니는 벌써 일어나 앉아있었다. 창가를 향해 앉은 채 기도를 하는 것 같아서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언니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언니도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내게로 몸을 돌렸다.
“아침 먹고, 엄마한테 다녀올까?”
“아, 근처에 선산이 있군요.”
“응, 나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엄마한테 다녀와.”
언니의 부엌은 텅 비어있었다. 불을 사용하지 않는 부엌같았다. 대체 이곳에서 어떤 요리다운 요리를 해먹을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언니의 부엌에서 살림을 한 흔적이라고는 이빨로 찢은 다시다 봉지뿐이었다. 그리고 소금은 빨간 뚜껑 달린 플라스틱통 안에 담겨 있었다. 해남 시내에서 간단하게 장을 봐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시인 언니는 서울생활을 할 때도 집에서 음식을 자주 해먹지는 않았으니까. 언니는 내 배낭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들을 구경하며 기뻐해주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어떻게 짊어지고 왔니?”
“언니, 잘 먹어야해. 특히 여름에 기력을 잃으면 안돼.”
내 눈이 부엌 한켠에 모아둔 술병에 가있자 언니는 수줍게 웃는다. 우린 서로가 말하지 않는 것들은 묻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서로에게 소중한 것이 꼭 같을 수는 없으니까.
익숙한 솜씨로 언니가 돗자리를 어깨에 걸친다. 나는 언니의 뒤를 따른다.
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 땡볕 속에서 산길을 얼마쯤 갔을까 언니가 무덤 앞에 선다. 돗자리를 깔고 절을 하고 술을 따른다. 그리고 엄마와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때 숲에서 사람 발소리가 난다.
“언니.”
“정임아. 언제 왔어?”
“응 아침에. 너무 더워지면 못올 것 같아서. 아버지 산소에 잡초도 뽑고 그러느라고 왔지.”
“그래. 앉았다 가. 여긴 서울에서 온 손님. 그리고 여긴 내 사촌 여동생이야. 중학교 다닐 때 나랑 같이 자취를 해서 친 자매같아.”
엄마의 무덤 앞에서 언니는 즐거워보였다. 집에서 느껴졌던 한기라고 할까 쓸쓸함이 사라진 채 다시 여학생이 된 듯했다. 영리하고 총명해서 집안의 어른들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여학생으로 돌아간 언니는 그제서야 소리내어 웃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언니가 주는 술잔을 홀짝홀짝 비웠다. 숲속의 새들이 푸드득 푸드득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이동하는 소리를 들으며 여자 셋이 무덤 앞에서 그렇게 오후시간을 보내다 내려왔다. 이제는 서로 헤어져야 할 시간. 나는 언니를 그 커다란 빈집에 두고 발길이 안 떨어졌다.
“또 와.”
“편지할게요.”
시인 언니가 손을 잡는다.
“그래서 이제 시내 목욕탕은 아예 안 가요?”
“응, 기운 없는데 등이 이렇게 넓은 아주머니가 같이 등 좀 밀자고 하면 거절할 수도 없고 힘들어서 안 가.”
우리는 다시 쿡쿡 웃으며 서늘한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 전에 서둘러 헤어진다. 언니는 저쪽에 나는 길 건너 시골 버스정류장에. 건너오려는 언니의 어깨를 돌려 집으로 향하게 한다.
“가서 쉬어요. 어제 잠도 별로 못 잤지.”
“다음에 또 와. 기다릴게.”
“그럼, 다음에 또 와서 맛있는 것 해드릴게요.”
버스가 왔다. 부릉 하고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와 섰다. 서둘러 버스에 올라타자 바로 출발하는 버스의 맨 뒤로 가서 작아지는 시인 언니에게 언제까지나 손을 흔들었다.
시인 언니는 시집 한 권 남기지 않았다. 가끔 그녀가 보고 싶어지면 내게 보낸 엽서를 꺼내 읽는다. 시원시원한 필체로 나의 안녕을 기원하고 복을 바라는 기도를 써서 보낸 엽서. 그 엽서에는 그날 우리가 언니의 엄마 무덤 앞에서 나누었던 상냥한 웃음소리가 박혀있다. 세상살이가 고될 때 그 천진하고 맑게 웃던 순간을 떠올리면 고양이가 풀을 먹고 아픈 배를 다스리듯 내 마음도 조금은 다스려지는 것이다.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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