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 소설

마음은 언제나 태양

by 이은주


아침에 엄마는 만 원짜리 한 장과 짧은 메모지를 식탁에 놓고 출근을 하고 없었다. 나는 혼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한잔 마시고 집을 나섰다.
학교 백일장이 있는 날이라 친구들과 모여서 덕수궁을 찾아가야 하는 날. 점심으로 김밥을 싸가야 하는 날인데 엄마는 김밥 쌀 시간이 없었고 나도 김밥을 쌀 줄 모른다. 그래서 슈퍼에 들러 신제품으로 나온 빼빼로와 사이다를 샀다. 빼빼로는 그동안 먹었던 과자들과는 달랐다. 양도 절반 정도 적고 맛은 두 배로 좋다. 빼빼로를 배부르게 먹을까. 여섯 개는 살 수 있는데 망설이다가 그냥 한 개만 집어넣었다.
버스를 타기로 한 장소로 갔더니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반보쯤 떨어져 함께 기다렸다. 그런 날이었다. 혼자 있고 싶은 날. 가끔 이렇게 이상하게 구는 나를 친구들은 그냥 내버려두었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가 출근길 만원버스 안에서 어른들 어깨 사이에 끼어서 여기저기 삐죽삐죽 흩어져나와서 말괄량이 삐삐같았다. 언제까지 양갈래 머리를 하고 다닐 수는 없다. 이번주 토요일에는 싹둑 잘라버려야지. 이렇게 마음먹으며 소풍용 흰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채 덕수궁 앞에 집합해있는 반친구들에게 다가갔다. 그때 강림이가 보였다. 그 아이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다. 왜냐하면 강림이도 친구들과 반보쯤 떨어져있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이 출석을 부르고 덕수궁에 줄을 지어 입장을 한 후 약속 시간까지 각자 흩어져서 원고지에 글을 써오는 것이 그날의 과제였다. 글을 완성해서 제출을 하면 점심으로 싸 온 도시락을 먹고 각자 알아서 집으로 가는 게 그날의 일정이었다. 친구들은 신나게 떠들면서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벤치로 가서 글짓기를 했다. 나는 석조전 앞 분수를 돌면서 어디에 숨어서 글을 쓸까 두리번거렸다. 그때 강림이가 또 분수 건너편에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강림이도 혼자였다.
다행히 나는 내 키만큼 자란 나무 숲 사이의 빈터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흰바지를 입고 올게 뭐람. 나는 빈 원고지 한 장을 찢어서 깔고 앉았다. 그리고 글짓기를 시작했다. 손목시계를 보며 사이다도 마시고 긴 빼빼로도 하나씩 꺼내 오독오독 씹으면서 동시 비슷한 것을 쓴 후 나무 숲에서 빠져나와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반장에게 원고를 건넸다. 덕수궁 벽을 따라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나는 또 강림이와 마주쳤다. 우리는 같은 동아리라 대화를 나눌만도 한데 강림이는 낯을 가리는 아이였고, 여간해서는 먼저 말을 거는 타입도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등교 길에 같이 걸은 적이 있었다. 긴 언덕을 오를 때 강림이가 한 말은 단 한마디 ‘저기 가나 간다.’였다. 그랬다 우리 학교에는 가나 쵸콜릿 모델로 인기가 있던 가나 언니가 다니고 있었다. 강림이와 나는 함께 걷다가 교련선생님이 ‘좌로 봐!’하고 구령을 붙인 것처럼 고개를 좌로 향한 채 30보쯤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말이 없었다.
“너는 왜 혼자 다니니?”
“친구가 없으니까.”
‘거짓말’내가 생각했다. 강림이와 나는 중학교 때도 같은 학교였다. 강림이는 4시만 되면 언제나 농구 골대에서 친구들과 골을 넣기 바빴다. 그렇게 친구가 많던 강림이에게 친구가 없을 리 없었다. 내가 고1 여름방학 때 엄마 집에서 아빠 집으로 보내져 여름을 나고 온 후 달라졌듯이 강림이도 어딘지 달라보였다. 그리고 친구가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친구가 많이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때는..
아, 강림이가 먼저 말을 걸어준 적이 있다. 자율학습을 째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사실 엄마의 가게에서 주문전화를 받아주기 위해서 가는거였다. 고2인 내가 엄마 가게에 나가 일을 돕는 건 조금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엄마의 가게가 잘 되어야 내가 학교에 다닐 수 있으니까 며칠쯤 자율학습을 빠져도 상관없다. 엄마의 가게는 늘 일손이 부족했으니까.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마이마이에서는 신디로퍼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볼륨을 최고로 하고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누가 말을 시켜도 모를 정도였다. 그때 강림이의 운동화가 보여 옆을 보았다. 강림이도 나와 같이 자율학습을 째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볼륨을 줄였다.
“어디 가?”

"집에. 너는?"
“응, 세종문화회관에 오페라 보러.”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냥 나와는 다른 저녁을 보낼 강림이의 옆얼굴을 보았다. 그랬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지. 나는 엄마 가게 보러 가는데.
“와, 대단한데?”
“그게 내 일인걸.” 나는 강림이의 이런 엉뚱한 대답이 좋다. 어른스럽기도 하고, 어쩌면 아주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하고 짧은 대답이 좋다.
또 한번은 등교 길 버스 안에서 강림이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나는 친구에게 빌린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를 읽고 있었는데 한쪽 손에는 버스 손잡이를, 또 한손은 문고판을 들고 흔들리며 열중하고 있었다. 얼마나 열중하고 있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강림이가 버스에 탄줄도 모르고 있었다.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어?”
누가 나에게 뭐라 하는 것 같아. 그런데 아니겠지.
“무슨 책 읽니?”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뭐해?”
그제서야 옆에 선 강림이에게 눈이 갔다. 나는 산만증이 있어서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하기 보다는 내가 생각한대로 말한다.
“응, 이 책 오늘까지 돌려줘야해. 친구에게 빌렸거든.”
그리고 다시 몇 장 안 남은 책에 시선을 돌린다. 맞다. 나 강림이 좋아하는데.. 때는 이미 늦어버렸고 강림이는 조용히 차창 밖에 시선을 주고 앞만 보고 있었다. 또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세계와 세계가 있다. 우주와 우주가 있고, 별과 별이 있다. 바람과 바람이 있고 나그네와 나그네가 있다. 만났다가는 헤어지고, 헤어졌다가는 만나는 관계. 서로의 세계를 동경하고, 우주를 궁금해하고, 별을 그리워하며 바람에 지쳐쓰러질 때가 있다.
그날 덕수궁에서 강림이와 나는 지나치게 자주 마주쳤다. 혹시 강림이도 김밥을 싸오지 않은 게 아닐까.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강림이와 내가 자주 엇갈려 만났던 이유가 생각났다. 그 아이도 나처럼 자신을 숨길만한 나무숲 빈터를 찾느라 그렇게 분주히 왔다갔다 했던 것이다. 친구들이 자신이 김밥을 싸오지 않은 걸 알고 나누어주는, 나누어먹는 소란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 강림이에게 다가가서 ‘난 네가 좋아, 이 빼빼로 같이 먹을래?’하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내가 먼저 다가가서 숨겨둔 비밀기지를 보여주고 공유했다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앉아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그네와 나그네가 세상의 비를 피하며 잠시 이웃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태양이 다시 떠오를 때까지.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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