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 소설

준비된 가족

by 이은주


나는 학교에서 가족에 대한 그림 숙제가 나오면 그날 기분에 따라 할머니도 넣었다가 할아버지도 넣었다가 삼촌, 고모도 넣는다. 물론 아빠도 넣는다. 내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지어서 낸 숙제는 상당히 오랫동안 만족스러웠다. 엄마 친구 은숙 이모를 넣기도 하고, 엄마 남자친구 또한 삼촌으로 끼워줄 때도 있다.

엄마의 남자친구는 아이를 무척 좋아하는 분이다. 그분은 이제 나의 가족이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소원을 비는 상자에 ‘훌륭한 아빠를 만나고 싶어요’라고 썼는데 그 소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만났던 삼촌들이랑은 달랐다. 그냥 대충 만나지 않고 다음에 만날 때 무엇을 하고 놀지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아무 때나 만나지 않고, 약속 날짜를 잡고 약속을 지켰다. 나는 엄마의 남자친구가 아빠가 되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나는 그분을 감독님이라고 불렀다. 감독님은 실제로 작은 방송국에서 편집일을 하신다고 했다. 잦은 철야작업으로 친구들을 자주 못 만난다고 했다. 쉬는 날이면 트렁크에 낚시 도구를 넣고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늘 혼자였던 감독님은 이제 혼자가 아니어서 무척 행복한 표정이다. 내가 원하면 운전석 옆자리에도 태워준다. 그러다가 꼭 다짐을 받고는 한다.
“돌아갈 때는 뒷좌석에 앉아야 하는거야. 앞좌석은 어린이에게 위험하니까.”
그럼 나는 아주 신나서 대답한다.
“네.”

엄마와 나는 준비된 가족이다. 왜냐하면 감독님이 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니까. 감독님도 우리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장난감 가게에도 데려가주고 감독님 집에 가서 요리도 해주면 우리는 아주 맛있게 저녁을 먹고 보드게임도 하니까. 내 친구들이 아빠랑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과 똑같다. 내가 상상해왔던 그런 아빠. 감독님과 나는 같은 줄무늬 티셔츠를 입으면 얼굴도 같아 보인다. 엄마는 우리 둘을 거울 속에 비추며 닮았다고 신기해 한다. 감독님과 나는 서로를 마주보며 씨익 웃는다.

나는 가끔 감독님이 보고 싶어지면 문자를 한다.
‘뭐하세요.’
‘일 하지. 밥 먹었니?’
‘네. 감독님은요?’
‘회사에서 먹었어.’
‘사진 보여주세요.’
잠시 후 수많은 모니터 기기 앞에 앉은 감독님 사진이 핸드폰에 뜬다. 누가 찍었을까. 좀 잘 찍어주지. 뒷모습만 보인다. 뒷모습이 어쩐지 슬퍼보인다. ‘어른들은 왜 밤늦게까지 일을 하지. 사장님 나뻐’라고 일기에 쓰다가 잠이 들었다.

photo by lam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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