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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Apr 30. 2019

페데리코 펠리니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있었다.
줄리에타 마시나의 '길'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다. 회고전 마지막 상영일인 7월 4일 나는 '8과 1/2'를 보기 위해 자명종을 맞추어 두었으나 결과적으로 시계소리는 듣지 못했다. 쿵하는 소리에 잠을 깬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새장 안에 있어야 할 잉꼬 두 마리가 새장을 탈출하여 이리저리 방을 나르다가 물건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나는 잠이 깬 것이다.
어떻게 새들이 새장 문을 열고 나왔을까 불가사의한 일이다. 수조의 물을 갈아 줄 때 물고기들을 건져내는 망으로 방안의 새들을 잡으러 다니며 부산한 아침을 시작한다.
제일 먼저 말썽꾸렁이 노랑이를 잡아 새장에 가둔다. 그물망 사이로 쥔 새의 몸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매일 물을 갈아주고 모이를 주는 사람을 몰라 보다니...' 다음엔 하양이를 잡기 위해 두리번 거린다. 거울 앞의 액세서리를 수납하는 접시 위에서 두리번 거리는 하양이 포획 성공. 하양이의 심장 뛰는 느낌이 손에 전해진다. 새장문에 숟가락을 걸고 외출을 했다. 내가 없을 때 또 새장문을 열고 탈출할까봐.
허리우드에 오래간만에 긴 줄이 생겼다. 영화는 극장 앞의 줄 때문에 10분간 상영이 지연되었다. 
마침내 조명이 꺼지자 이탈리아의 교통체증을 말해주듯 차들이 꽉 찬 도로가 나타난다. 차 안에는 지루한 표정의 얼굴들. 그 중에서 한 사람의 차 안에서 가스가 나온다. 간신히 차 위의 창으로 나온 주인공은 자동차 지붕에 서서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서 있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씬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의사로부터 진흙 목욕을 처방받은 주인공은 온천장을 찾는다. 수중기로 가득 찬 온천장 안에는 흰 수건을 두른 노인들만 보인다. 카메라는 수도원의 씬이나 가든 파티 씬에서도 두드러지게 노인들만 비추고 있다. 의도적인 듯한 씬이다. 온천장 씬이 의도적임이 확실한 것은 다음에 나오는 장면 때문이다. 늙은 여배우는 노래한다. 60살을 끝으로 퇴물 배우가 되려는 자신을 영화감독에게 70살로 연기해달라고 애원하는 노래. 영화감독은 아내와 젊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고개를 젖는다. 오직 젊음만 아름답다. 나이들고 늙는 것은 추하다라는 사회 편견을 유니크하게 표현하고 있다.

현실과 환각 사이를 오고 가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잦은 데자뷰를 느꼈다. 이 장면도 본 것 같고, 저 장면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작년에 개봉한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나인'은 '8과 1/2'의 오마주였고, 나는 이미 그 영화로 '8과 1/2'을 학습한 상태였던 것이다.

창조력이 고갈된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펠리니의 자전적 작품이라고 한다. 주인공에게는 아내와 여배우와 정부가 있다. 그녀들은 주인공을 커다란 포대에 들어올리며 '나의 큰 아기'라고 한다.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의 이야기. 피터팬증후군의 남성을 좋아하는 모성애가 강한 여성 역시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의식이 있는 건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유년시절로 잡아두고 싶어하는 유치함이 그들을 연대하게 하는 건 아닐까.
주인공이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모습이 자주 편집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 아니 자신의 문제를 알지만 자신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어차피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으로 다시 기어들어갈 수 없지 않는가. 살아있는 한 다시는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웅크리고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주인공은 불행한가. 그는 신부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 행복해야 하나요?' 추기경이 되묻는다.
 '당신의 임무는 그게 아닙니다. '
영화는 주인공의 유년시절을 세피아톤으로 보여준다. 은은하고 애수가 깃든 허밍으로 노래가 흐르는 동안 소년은 목욕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소년의 머리맡에서 엄마가 묻는다.
 '누가 제일 좋아?'
 '엄마.'
누가 제일 좋냐는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엄마'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소년에게 그리 길지 않다. 소년이 돈을 주고 늙은 창녀에게 노래를 시키는 바닷가 장면이 그렇다. 소년과 함께 늙은 창녀의 노래를 듣던 친구들도 마침내 컴플랙스 덩어리인 채로 어른이 될 것이다.

자신의 자전적인 내용을 영화화 한 시사회가 끝나자 아내는 말한다.
 '왜 남들을 가르치려고 들지? 당신과 같이 늙어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사생활을 까발리는 뻔뻔한...'
창조력이 고갈된 영화감독에게 남은 이야기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더이상 모성애로 감싸줄 수 없는 아내 또한 앞뒤가 막힌 인생의 벽 앞에 있는 것이다.
영화감독 귀도는 말한다.
 '삶은 축제야.'

그렇다. 삶은 축제여야 한다. 손을 잡고 친구들과 죽은 애완동물과 유년의 자신과 젊었던 어머니와 재회해야 한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바로 영화가 있다.
 '8과 1/2'을 보게 되어 다행이다. 많은 사유가 있다. 수도원 풍경과 온천장, 가든 파티에 썼던 모던한 의자들도 인상적이었으며 배우들의 복장 또한 아름다웠다.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음악이었다. 가슴을 진동하게 하는 클래식과 수많은 음악 중에서 특히 귀도의 어린시절 씬에 썼던 허밍은 나를 우울하게 했고, 이유 없이 울고 싶어지게 했으며 영화 도중에 나른함을 느껴 낮잠을 청하고 싶게 했다.  1963년의 영화라는데 현대적일 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이 실제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다니 대단한 영화이다.

2011/03/1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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