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를 읽고 나는 이야기 하나를 만들었다. 여성 법관이 90프로를 차지하여 법이 바뀌게 된 세상에서 나는 나를 고발하러 법정에 선다. 그것은 도발, 그것은 그동안 거리에서, 버스에서, 이웃이 시도했던 모든 성추행에 수동적인 자신을 고발하는 법정이어야 한다. 또한 법정에 선 나의 증언에 소환된 이는 다름 아니라 일곱 살 때 여자아이들 스커트를 들추었던 뽑기 천막 아저씨,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에 어른은 없냐며 봉긋 나온 내 가슴 언저리에 손등을 대고 지그시 누르며 집안을 기웃거렸던 방문판매 아저씨, 그것은 중학교 때 소풍을 가기 위해 탄 버스에서 친구의 엉덩이에 두툼한 손을 대고 나서 내 쪽으로 다가올 때 나와 눈이 마주친 아저씨, 나는 그 아저씨의 팔에 영희철희 크로스처럼 나를 보호하며 맞섰지만, 그때 무서웠었다. 그후 신주쿠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같은 식의 추행을 피해 여성잡지 코너로 밀려갔던 나. 입을 꾹 다무는 걸로 거부를 했던 소극적인 나를 고발하려 한다. 또한 그 고발에 있어서 증인으로 불려나온 그들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그때 왜 그랬니? 하고 묻고 싶다.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를 읽는 동안 많이 아팠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도입 부분처럼 문장에서 냄새를 맡다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나에게 벗어둔 빨간 치마가 있구나. 빨간 치마의 아이가 커서 내가 되었다. 아픈 내가 되었다. 아픈 내가 지난 성범죄의 한가운데 있던 이들을 소환하러 만나러 가는 꿈을 꾼다. 그들은 소환 전날 잠을 설쳐야한다. 법정에 서는 것이 두렵고 부끄러워서 토사곽란에 시달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성취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벌거벗은 채 평생을 살도록, 옷을 입을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 그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범죄이며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기임을 확실히 알게 해야만 한다. 법정에 선 나는 평생 복싱회원권을 받고서 링 위에서 그들을 때려눕힐 체력과 정신을 키울 것을 판결로 받는다.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에서 <열여섯의 일>의 화자로 성장한 여성은 이렇게 쓴다. ‘아빠 나이의 남자와 세호만큼 어려보이는 남자, K와 비슷하게 생긴 남자들 그들이 가까워질 때마다 나는 등을 약간 구부려 도드라진 유두가 눈에 띄지 않게 했고 그들이 지나쳐 간 후에 등을 다시 폈다.’라고. 우리는 문밖을 나오면 두려움뿐인 세상에서 사는구나,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의 눈빛도 상처가 된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알릴 수 있을까. 남학생들은 이 책을 읽어야한다. 나중에 읽으면 이미 늦는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래야 서로 온전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