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매일 자신이 가진 것 한도 내에서 사랑을 나누고 성실하게 사시는 모습을 5년 동안 지켜보았어요.
이번에 도배, 장판은 어쩌면 할아버지 마지막 실내장식이 될지도 몰라요. 여든의 노인에게는 굉장히 부담이 되는 지출과 노동일거예요. 할머니께서 좁은 방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섞여 왔다갔다 하실 것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제가 모시고 가서 맛있는 음식해드리고 싶어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할아버지 도울 일 있으면 S씨가 두루 살펴 도와주시겠어요? 그저 혼자 힘으로 살아오신 할아버지는 누굴 시킬 줄도 모르고 의지할 줄도 모른답니다. 손자는 더욱 시키지 못할테니 군대에서 배운 촉으로 필요한 일들을 도와주세요. 올봄 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는게 아닌가 걱정이 들만큼 많이 아프셨어요.
ㅎㅎ 할머니한테 전달 해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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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뮤즈가 5년 만에 우리집에 오실 결심을 하셨다.
나는 냉장고 칠판에 뮤즈의 식단을 짜고 있었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온 전화.
"나야."
모르는 나이든 여성의 목소리.
뮤즈의 목소리는 전화상으로 들으면 늘 낯설다. 손자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신거였다.
남편에게 도배.장판하는 전날 저녁에 요양보호사 집에 가서 자고 올거라고 했더니 '가서 성가시게 하지 말라고 ' 못가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올봄 '더 이상 술을 마시면 돌아가신다'는 의사의 말에 제우스는 술을 끊었다. 금단 현상이 왔고 몸져 누우셨고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생으로 극심한 고통에 몸을 맡겼다. 물잔을 든 손이 흔들렸다. 나는 지난 여름 엄마를 살려낸 경험이 있다. 영양제를 맞혀드리고 반짝 기운이 나면 맛있는 음식을 드시게 하는 것이다. 나는 영양제 값 6만 원이 아깝지 않았다. 아픈 와중에도 제우스는 신세지는 게 싫어서 영양제 비용을 지불하셨고 나는 준비해갔던 봉투를 간호사에게 주고 다음주에 한번 더 와달라고 청했다. 그렇다. 영양제는 한번이 아니라 연달아 두 번 맞을 때 효과가 있다.
봄이 가고 여름이 들어설 무렵 여든의 제우스는 다시 장을 보기 시작했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안심했다. 그런 제우스가 유일하게 나의 말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손자의 핸드폰 저쪽에서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물소리가 들리며 제우스는 할일 많은데 가긴 어딜 가냐고 또 한번 초대를 거절하셨지만 절반은 포기한 기색이다. 이번엔 쎈 요양보호사 차례.
"좁은 방에서 일꾼들 피해 이쪽저쪽 다니는 것도 힘들고, 중요한 건 맛있는 저녁 해드리려고, 잡채해드려고 지금 장을 봐왔어요."